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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세이] 시민들에겐 ‘동해 풍력발전’보다 소중한 ‘70m 고가사다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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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20.10.1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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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밤 울산 남구 삼환아르누보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번지고 있다. 이날 50m 고가사다리차는 소용이 없었다.울산소방본부 제공

 

 

 

 60~70년대 근대화 상징된 고층아파트
 올 1월 전국 30층 이상이 3,885곳
 울산에도 32곳, 40층 이상도 10곳

 두바이 86층 아파트 대형화재 사망자 ‘0’
‘울산화재 기적’ 혼신 다한 소방관 덕분
 송 시장 ‘고가사다리차 혜안 있었다면...’

 

김병길 주필

 

 

1960년대 조국 근대화의 상징중 하나는 고층빌딩이었다. 서울의 외인 아파트가 남산비탈에 지어진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심지어 서민아파트 마저도 자꾸 산으로 올라갔다.

1969년 김현옥 서울시장은 400동에 달하는 시민아파트를 주로 높은 산위에 지었다. 국장과 과장들이 “아파트를 너무 높은 데 지으면 위험하기도 하고 주민이 오르내리는 데도 불편하다”면서 이견을 내놓자 김현옥 시장은 “높은 곳에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이라고 우겼다.

가장 먼저 지은 산동네 아파트는 1968년 6월 18일 기공식을 올린 서울 서대문 현저동의 금화아파트 19개동 이었다. 당시 청와대 뜰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금화아파트 19동의 모습이 정면으로 들어왔다.

1970년 4월 8일 33명의 목숨을 앗아간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이 일어난 이유중 하나는  와우산 중턱, 너무 높은 곳에 지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전반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소공동의 지상 8층 반도호텔이었다. 당시 서울시내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은 10여 개에 지나지 않았다.

66년 서울에 6~9층 건물이 111개, 10층 을 갓 넘은 건물이 18개였다. 그런데 70년에는 6~9층 건물이 487개, 10층 이상 건물이 122개로 늘어났다. 이들 건물 중 상당수가 고층 아파트 시대를 열었다.

1990년 31층이라고 해서 삼일빌딩이 준공되었다. 전국민이 자랑스럽게 생각한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서울 구경온 시골 사람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었다.

고층빌딩은 근대화의 상징이자 실체였다. 그래서 ‘3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69년 7월 17일 발표한 <역사 앞에 선언한다>라는 성명도 ‘고층건물’을 ‘정권 연장을 위한 전시효과’중의 하나로 간주했다.

2020년 10월 8일, 한글날 연휴 첫날밤인 오후 11시 7분쯤 시작된 울산 남구 주상복합건물 화재는 하룻밤을 꼬박 가슴을 조리게 한 다음 15시간 40분만에 겨우 진화됐다. 외벽을 타고 올라간 불길이 33층 건물 전체를 휘감았다. 건물 외장재에 가연성 물질을 사용한 데다, 사다리차 등 고층 건물화재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점이 불을 키운 원인으로 알려졌다.

TV화면을 통해 생중계된 화재 현장은 135층 마천루가 불타오르던 영화 ‘타워링’(1974)의 한 장면 같았다. 건국 이후 최초의 고층 건물 화재였던 대연각 호텔 화재(1971)를 떠올리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대연각 화재는 10시간 이상 불이 이어졌다. 16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 현장을 TV로 지켜보던 시민들은 안타까움에 가슴을 쳤다.

세월이 흘러 2020년 대한민국은 초고층아파트 시대가 열렸다. 건설업자들의 이익과 정부정책이 짝짜꿍 하면서 자고 나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전국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4,692곳에 이른다. 2016년 말 3,266곳에서 3년 여 만에 1,000곳 이상 늘었다. 전체 30층 이상 건물 중에서 아파트가 3,885곳으로 가장 많다.

울산에는 30층 이상 공동주택이 32곳이나 된다. 이곳에는 2만1,670가구가 살고 있다. 이중 40층 이상 공동주택만 해도 10곳에 가깝다. 아파트를 포함한 30층 이상의 빌딩은 100여개를 넘는다. 그러나 이들 고층건물들은 화재가 발생하면 진압에 속수무책이다.

고가 굴절 사다리차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때 부산의 70m 고가 사다리차가 오는데 6시간이나 걸렸다. 어지간한 건물은 다 태우고도 남는 시간이다. 울산과 대구, 광주는 30층 이상의 고층 건물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70m짜리 고가 굴절 사다리차가 아직 없다.

전국에 일반 사다리차는 461대가 있다. 최대 23층까지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70m 고가 사다리차는 10대 뿐이다.

건물 높이가 올라갈수록 건물 내부에 불이 번지는 것을 막을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 2017년 8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86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토치 타워’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반면 그로 부터 2개월 전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24층 아파트 ‘그렌펠 타워’ 화재에서는 8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화재는 가연성 소재가 외장에 사용됐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지만 인명 피해 발생 여부를 가른 것은 ‘화재 차단망’ 이었다. 2011년에 지어진 토치타워는 강철과 콘크리트 방화벽이 각층과 가구를 나눠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1974년 완공된 그렌펠 타워는 스프링 쿨러도 없었고 화재경보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울산소방본부는 화재 발생신고를 받자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1,300여명의 소방대원과 148대의 장비가 동원됐다. ‘사망자 0’의 가장 큰 공로는 역시 15시간 40여분의 긴 화재에 혼신을 다한 소방관들에게 있다. 건물 내부로 진입해서는 각 호실을 돌며 주민들의 대피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주민들의 침착한 대피도 큰 몫을 했다. 매뉴얼을 따라 신속하게 대피하고 피난 층과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등 침착한 행동으로 3시간 만에 모두 무사히 대피했다.

지난해까지 3년간 30층 이상 건물에서 493건의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숨졌다. 삼환아르누보는 두 곳의 대피층 또한 기적을 이루었다. 고층건물의 화재관련 법규에 사각지대가 없는지 다시 따져봐야 한다.

화재 이후 송철호 시장의 70m 고가사다리차를 확보하겠다는 발표는 실망스러웠다. 하기는 고가사다리차 확보 계획을 전임 시장때도 논의 되었으나 불발로 그쳤다.

그동안 동해 풍력발전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에 매달려온 송 시장이 혜안을 발휘해 진작 70m급 고가사다리차를 확보했다면 이번 화재 때 얼마나 요긴했을까. 늦었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시민안전을 위한 대책들을 챙기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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