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민 울산경제진흥원 원장

방송, 한 나라의 나아가야할 길·당대 문화에 큰 영향
찾기 쉬운 ‘트로트·먹방’ 매진…시청률↑·열풍 견인
청년들 창업·혁신에 매진하는 문화 조성도 이끌어야

트로트 열풍이 불었다. 장년과 노인층을 겨냥해 모든 방송이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사람들은 트로트 가수나 모창신이 되기를 열망한다. 테니스장에서도 ‘테스 형’이라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우리 민족이 정말 음악적 DNA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먹방은 트로트 열풍 이전부터 불기 시작해 아직 진행형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전 국민이 모두 비만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덕분에 방송에 나온 음식점은 긴 줄이 서고 나름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해지기도 했다. 음식점, 카페의 창업이 늘어나고 그만큼 폐업도 증가했다. 그래도 분위기 있고 맛있는 음식점은 예전보다 훨씬 늘었다.
방송국으로서는 시청률이 중요하다 보니 우선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쉽고 소재도 찾기 쉬운 트로트나 먹방에 매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방송은 한 나라의 나아가야 할 길과 당대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대중 대통령 때 창업 벤처 열풍이 불었다. 너도, 나도 창업을 해 보고 싶어했고 나도 그 일원이 되어 창업을 해 보기도 했다. 안정적 직업을 가지고 경험상 창업을 해 본 나로서는 폐업이 매우 큰 부담으로 닥치지는 않았다. 그래도 교훈은 남았다. 한 가지 일에 모든 것을 바쳐 매진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추진력이 중요하다는 점, 전문가는 독특한 기술을 가진 기술형 창업이 바람직하며 생계형 창업은 쉽지 않다는 점과 같은 교훈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 즉 토목 사업에 20조 이상을 투자하고 해외자원개발에 많은 자금을 넣기도 했다. 그 돈의 많은 부분이 벤처 창업에 계속 투자되었더라면 매출 1조를 넘는 유니콘 기업의 수가 이스라엘이나 중국을 능가했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전국적으로 설립했다. 꺼져가던 벤처 창업에 대한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지만 이미 기가 다소 꺾인 상태였다. 방송에서도 벤처 창업에 대한 내용이 방영되기도 했으나 초창기의 너도 나도 창업을 해 보겠다는 열망을 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중국과 같이 ‘대중창업, 만인혁신’을 위해서는 언론의 힘이 매우 크다. 그런데 우리는 텔레비전만 켜면 흥겨운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오고 밤 10시를 넘었는데도 식욕을 돋우는 먹방이 즐비하다.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창업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방송이 앞장서도 보수적이며, 안정을 선호하는 일반인의 성향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고등학교의 우수한 인재가 대부분 의대를 지원하고 대학 졸업자의 선호도 1순위가 공무원인 사회는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힘든 시대를 버티며 살아오다 사오십대에 정리해고를 당한 어른의 입장에서 안정적 직장을 추구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부모의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는 순종적 젊은 세대가 바뀌지 않고서는 인재 한 명이 몇만 명의 국민을 지탱하는 미래 산업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벤처기업은 2019년 현재 3만7,000개 정도가 되고, 창업기업 수는 128만5,000개 정도가 된다. 기술혁신형 창업 기업인 이노비즈는 1만8,000개 정도이다. 창업이 줄어들고 있다. 경기 탓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산업의 구조가 바뀌는 것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청년창업이 돈 먹는 하마이며 청년에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패가망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은 창업에서 우리를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등에 과감히 투자하며 창업 선도 국가가 되었다. 가장 우수한 인재가 문화기술을 포함한 혁신에 매진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스타벅스와 같은 멋진 창업 카페가 우후죽순 만들어져 젊은이가 그곳에서 창의력을 발휘하게 해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등과 같은 유니콘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탄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벤처, 먹방 열풍을 넘어 창업열풍으로 청년을 설레게 해야 밝은 미래의 창을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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