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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세이] 통큰 기부의 전설…울산대공원·태화루·종하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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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20.11.1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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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으로 지고있는 울산대공원의 단풍이 만추의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울산매일 포토뱅크

 

 


국내 최대 석유화학사 SK·에쓰오일
울산대공원 건설, 태화루 중건 기부
기업이윤 사회환원의 모범 보여

1977년 건립 울산종하체육관
다목적 시민센터로 재건립 계획
고 이종하씨 장남 대이어 건립비 기부

 

 

 

2020년 만추(晩秋)는 울산대공원에서 절정을 맞고 있다. 붉게 물든 낙엽이 눈보라처럼 쏟아지고 있다. 후회를 모르는 자연의 섭리에 고개가 숙여진다.

조선 말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은 우리나라에서 1880년 최초로 석유가 사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미국, 일본, 러시아 개항장을 통해서 들어온 석유는 1886년 10만 갤런이었으나 10년 뒤인 1896년에는 200만 갤런에 이르렀다. 당시 수입 석유는 대부분 등화용이었으며 1880년대에는 서울장안에 석유가로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1964년 우리나라 최초로 유조선 걸프 이탈리안호가 중동지역으로부터 원유를 싣고 울산항에 들어왔다. 이 원유를 사용하여 약 45일간의 시운전을 거쳐 4월 1일 울산정유공장이 정상가동되고 석유류 제품 생산이 시작됐다.

울산정유공장이 모체가 돼 탄생한 유공→SK㈜는 국내 석유화학공업을 선도하게 됐다. 동시에 석유화학공단에서 내뿜는 대기오염 물질은 본격적인 환경오염 시대의 막이 올랐다. 이후 반세기에 걸쳐 시민들의 피해는 이어졌다.

SK는 울산 도심의 허파라고 할 수 있는 울산대공원을 지어냈다.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110만여 평의 부지에 1,000억원을 투자해 시설을 조성한 뒤, 이를 울산광역시에 무상  기부하기로 했다. 

울산대공원 공사는 1997년 10월에 첫삽을 뜬 후 2002년 4월에 끝났다. 공사비는 816억원(시비 273억원)이 들었다. 2차공사는 같은해 5월 시작해 2006년 5월에 끝났다. 사업비는 611억원(시비 154억원)이다. 울산대공원은 1차 사업이 끝난 2002년 1차 개장에 이어 2005년 9월에 2차로 개장했다. 울산시민들에게 울산대공원은 뉴욕 센트럴파크가 부럽지 않은 휴식공간이다. 
울산 태화강변의 명소 태화루는 고려성종 (成宗)이 울산행차때 잔치를 열었던 장소로 기록돼 있는 누각이었다. 주변의 풍광이 아름다워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영남 3루’로 꼽혔다. 태화루는 고려시대 부터 는 ‘울주팔경’에 꼽혔다. 김종직, 김시습 등이 시를 남긴 곳이었으나 임진왜란 전후에 소실되고 말았다.

그로 부터 400여년이 지나 울산시와 정유사 에쓰오일이 앞장서 복원에 나서 시민의 염원이 이루어졌다. 에쓰오일은 복원비 총 500억원 중 누각 건립에 필요한 100억원을 기부했다.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참조하여 정면 7칸 측면 4칸의 주심포 팔각 지붕으로 건립된 태화루는 2014년 4월 완공이후 태화강변을 지키고 있다.

‘3·1절 기념행사가 울산종합체육관에서 성대히 열렸다.’ 1980년 3월 2일자 중앙일보 영남판에 실린 3·1절 기사의 일부분이다. 기사 내용중 ‘울산종합체육관’은 ‘울산종하체육관’을 잘못 쓴 기사다. 취재기자는 분명 ‘울산종하체육관’이라고 썼으나 본사 데스크가 ‘울산종합체육관’으로 판단하고 잘못고쳐서 오보가 됐다. 당시 지역 일간신문이 없던 시절 중앙일간지에선 ‘종하체육관’을 ‘종합체육관’으로 표기하는 해프닝이 잦았다.

1962년 울산공업센터 건설 이후 새 시대를 맞은 울산시는 4년마다 열리는 경남도민체육대회를 맞아 1970년 5월 남외동에 울산공설운동장을 준공해 제9회 경남도민 체육대회를 치렀다.
하지만 울산에는 실내경기장이 없어 큰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울산체육회는 신정동 소재 어린이공원 용지로 지정돼 있던 약 3,000평의 임야를 용도 변경, 실내체육관 건립부지로 전용해 줄것을 울산시에 요청했다.

울산시는 1976년 12월 28일 실내체육관 건립공사에 착공, 1977년 9월 준공했다. 건립비는 울산출신 재력가 이종하(李鍾河·1889~1978)씨가 희사했다. 

일제때 울산병영청년회 간사(1925), 울산수리조합 총대회 보충원(1933), 하상면 번영회 평의원(1940)을 역임한 이종하씨는 1920년대 후반에 과수원으로 개간한 야산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했다. 여기에서 나온 수익으로 토지에 재투자해 거부가 됐다.

1962년 울산시 승격 이후 땅값이 많이 오르자 그가 당시로서는 거금인 건평 774평의 실내체육관 건립비 1억3,100만원을 내놓았다. 1977년 실내체육관이 완공되자 울산종하체육관으로 이름 지었다. 

이종하씨는 종하체육관과 청솔공원 사이의 현 울산남부경찰서 부지도 울산시에 기증했다. 1977년 제2회 울산시민의 장(공익장)을 받았다.

송철호시장은 민선7기 출범 공약사업으로 건립 43년이 지나 낡은 종하체육관 재건립을 약속했지만 500억원에 이르는 비용 때문에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울산시는 최근 고(故) 이종하 씨의 장남 이주용 KCC정보통신회장과 협의 끝에 종하체육관을 다목적 시민센터로 재건립키로 했다. 

고 이종하 선생 장남 이주용 회장은 43년전 아버지에 이어 “울산의 미래 발전을 위해 시민들이 100년을 거뜬히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지어 기부하겠다”고 ‘통큰’ 기부를 약속했다.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나 1953년 경기고, 1958년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1967년 ‘국내 1호 소프트웨어(SW)기업’ 한국전자 계산소(KCC정보통신의 전신)를 설립했다. 특히 1960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IBM사에 입사, 1967년 국내 최초로 컴퓨터를 들여와 ‘한국 IT 산업의 문익점’으로 알려졌다. 1976년 주민번호 보안체계를 개발해 일본보다 앞서 주민등록 전산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울산대공원과 태화루와 함께 대를 이은 이주용 회장의 통큰 기부로 다시 태어날 다목적 시민센터, 이 가을 통큰 기부의 전설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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