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에서 상대팀 수비보다 더 골대 가까이에 있는 같은편 선수에게 패스하면 ‘오프사이드 반칙’이 된다. 골을 넣어야 이기는 축구경기에서 무슨 수를 쓰든 득점만 하면 될텐데, 이것이 반칙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세 영국의 마을 축제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부활절을 앞둔 마을 축제의 메인 이벤트로 벌어진 ‘매스 풋볼’은 무려 1,000명의 사람이 4km 거리의 골대를 사이에 두고 도시 전체가 축구장이었다. 이 매스 풋볼이 이후 근대 스포츠 축구와 럭비로 발전 했다.

오프사이드 규칙은 풋볼의 본래 목표가 ‘오랫동안 즐기는 놀이’였음을 상기 시킨다. 쉽게 한 골을 먼저 얻으면 그 것으로 끝난다. 풋볼도 끝나고 축제도 끝난다. 따라서 어떻게 하던 골인 규칙을 까다롭게 만들어 더 오래 즐기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에서 독일작가 귄터 그라스가 ‘오프사이드’라는 축시를 낭독 했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 이 시에서는 시인의 고독을 유예시키는 오프사이드다. 수비 없는 적진에 공을 몰고 들면 골인에 직결될 것은 뻔한 일이다. 승부가 빨리 끝나면 구경꾼의 흥미도 반감된다. 빨리 승패를 가르지 말고 보다 오래 끌며 실력을 겨루어 골을 넣도록 제동하는 것이 오프사이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한국의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아르헨티나였다. 마라도나를 밀착 마크한 허정무 선수의 깊은 태클 장면이 전 세계 TV에 중계되면서 ‘태권 축구’라는 비판을 받았다.
마라도나는 11개의 파울을 당하면서 3개의 도움을 기록, 아르헨티나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발에서 공이 30cm 이상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환상적 드리볼을 보여줬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

165cm의 키에 황소 같은 돌파력과 발레리나 같이 정교한 발재간으로 적진을 돌파하는 장면은 그를 축구의 신(神)으로 만들었다. 볼을 발에 달고 골대로 치닫는 황소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에게는 오프사이드라는 규칙이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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