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경찰이 수사하도록 하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 처벌법) 개정안 등 일명 ‘정인이법’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관련 법안을 쏟아낸 것을 두고 ‘졸속입법’이 오히려 아동학대 피해자를 더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2000년 영국에서 친척의 학대로 한 어린이가 숨졌다. 영국 정부는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2년 동안 조사끝에 아동보호 체계의 개선점을 마련했다. 피해 아동의 이름을 따 2002년 내놓은게 ‘클림비 보고서’다. 우리도 정부와 국회, 전문가 집단이 모여서 끈질긴 진상조사로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아동학대 문제를 뿌리 뽑겠다는 진정성을 갖고 제대로 원인을 찾았어야 했다.


현재 아동학대 가해자 형량 상한선은 무기징역까지다. 대법원의 양형기준을 조정하면 된다. 형량을 강화하면 신고율을 높이거나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것만 어려워진다. 가해자 처벌보다 중요한건 아동을 보호하는 방안이다.
근로자가 일하다 숨지면 경영자를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계와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건 중요하지만 처벌만 강화한다고 해서 저절로 산업재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무리한 처벌은 오히려 일자리만 죽이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 대기업은 중소기업 하청을 줄일 것이고, 사고가 터졌을 때 경영자가 징역을 살아야 한다면 외국기업은 한국에서 떠나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벌의 모호성과 형평성 등 법리적 문제는 물론 현실과 괴리된 법안이 만들어져선 안된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억지(抑止) 춘향’이란 게 있다. 유래에대해서는 이설(異說)이 있으나 ‘격에 맞지 않거나 어색하여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우겨서 하거나 하게되었을 때’를 의미한다.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졸속입법’이 되면 ‘억지 춘향법’으로 전락할 우려만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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