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진/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프로그래머  
 
   
 
 

언제서 부턴가 ‘n차 관람’이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다. 어떤 이들에겐 같은 영화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는 이 행위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필자 역시 그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보고 또 보고 하는 편은 아니다. 영화경험이라는 것은 단지 그 콘텐츠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 장소와 계절, 함께 있었던 사람이나 영화 보기 전후의 경험들이 모두 한꺼번에 작동하여 특정한 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한 작품은 하나의 경험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이유가 크다.
코로나로 인해 극장가가 얼어붙은 지난1년, 새로 제작한 영화들이 개봉시점을 두고 고민하는 사이, 반가운 재개봉 영화들이 눈에 띈다. 지난 크리스마스엔 마스크와 장갑으로 방역무장을 하고<화양연화>를 보고 왔다. 2000년 가을, 한창 영화를 공부하던20대 학생 시절에 봤던 작품을 20년 만에 다시 극장에서 만났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감흥은 처음 그 영화를 만났을 때보다 훨씬 풍성했고 성찰적이었다.
<화양연화>가 왕가위 감독의 마스터피스가 될 수 있었던 여러 지점들 ? 부유(浮遊)하는 홍콩, 닿지 못하는 사랑, 특유의 빛과 색, 카메라 스타일 등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 장숙평 미술감독과 함께 만들어내는 왕가위 세계의 축약을 만날 수 있는 것까지는 이미20년 전 경험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신기한 것은 지난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것이랄까. 설정 쇼트(Establishing Shot)를 아예 빼버렸기 때문에 진부한 이야기에 박진감을 부여하여 두 주인공을 미스터리하게 구축한다거나, 좁은 복도와 골목, 창과 창살 등으로 인물들을 가두어 놓음으로 남녀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하는 등등 두 번째이기에 더 잘 들여다보이는 영화 언어들 이야기가 아니다. 젊은 날엔 채 이해하지 못했던 두 사람 사이의 뉘앙스가 느껴지더라는 것!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이전엔 극중 인물보다 어렸고, 지금은 극중 인물보다 더 나이를 먹어버렸으니.
같은 작품이어도 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이래서 영화 보기는 즐거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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