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난 후 언제 어떻게 떠날지 다를 뿐 반드시 죽음에 이른다. 죽음의 어휘를 살펴보면 일반인들의 죽음은 ‘돌아가셨다’, ‘사망(死亡)’, ‘타계(他界)’ 등으로 표현한다. 윗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별세(別世)로, 존경의 의미를 담은 서거(逝去)도 있다.

지붕(地崩)은 ‘어머니의 죽음’을, 천붕(天崩)은 ‘아버지의 죽음’을 붕어(崩御)는 ‘임금의 죽음’을 가리킨다. 종교적으로는 선종(善終)은 ‘교황이나 신부의 죽음’을, 소천(召天)은 ‘목사나 신도들의 죽음’을, 열반(涅槃)은 ‘스님의 죽음’을 가리킨다. 6·25전쟁 때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죽음은 산화(散花)라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사망자 수(30만7,764명)가 출생아수(27만5,815명)보다 많았다. 코로나 시대,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비일상적 일상 앞에서 세계는 다시 죽음을 배우고 있다. 죽음이 병원에서 ‘외주’된 사회, 의학  발달 탓에 죽음의 정의마저 모호해진 지금이야말로 품위있게 죽는 법을 배우고 준비할 때다. 

2021년 1월 들어 코로나로 하루 평균 20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코로나 사망자가 12일 기준 1,165명이지만, 이들을 선뜻 받아주는 장례식장이 드물다. 유족들은 “코로나 사망자는 죽어서도 구천을 헤매고 다녀야 하느냐”며 하소연 하고 있다. 코로나 사망자는 일반 시신 화장 후 오후 늦은 시간대에 화장한다.

장례식장들은 여러 이유로 코로나 사망자 시신 안치를 꺼리고, 화장 이후 빈소를 차리는 것도 반기지 않는다. 우선 감염 방지를 위한 별도 안치 냉장실이나 보호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 또 코로나 사망자 시신을 받았다가 방문객 중 확진자라도 나오면 며칠간 사업장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 ‘코로나 사망자 장례식장’이라는 소문에 이용 문의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지정 장례식장이라 하더라도 거부 못하도록 강제로 맡길 수는 없다.

죽음은 이승의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길이다. 여행이 끝났으나 안치도 장례도 꺼리니 갈 데 없는 ‘코로나 죽음’은 구천을 떠돌아야 하나. 세상을 품위있게 이별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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