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본래 기는 즘생/ 무엇이 싫어서/ 땅과 낮을 피하야/ 음습한 폐가(廢家)의 지붕 밑에 숨어/ 파리한 환상과 괴몽(怪夢)에/ 몸을 야위고/ 날개를 길러/ 저 달빛 푸른 밤 몰래 나와서/ 호올로 서러운 춤을 추려느뇨.’ (청마 유치환의 시 ‘박쥐’)

박쥐는 다양한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있어도 염증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전염병의 핵심 숙주로 지목된다. 감염병 학자들은 특정 지역에 갑자기 박쥐 종이 늘어나면 사람이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로버트 바이어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바뀌면서 일부 박쥐가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 이동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지역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불과 1년 사이 전 세계에서 23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가 사실상 기후 변화에 비롯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00년간 중국 윈난성 남부를 비롯한 남아시아 지역 식생이 기후 변화로 바이러스를 품은 박쥐가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기원을 찾기 위해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방문한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이 처음 집단감염이 발생한 우한의 수산물시장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감염 경로 규명에 더 다가설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됐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1,900년대 초반 박쥐 종의 전세계 분포와 현재 박쥐 종의 분포를 분석했다. 최근 100년간 40종의 박쥐가 중국 남부와 인접한 라오스, 미얀마 지역으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박쥐들이 보유한 코로나바이러스 종류도 100종 이상인 것으로 추정했다. 과학자들은 전세계에 분포한 박쥐 개체군이 약 3,000종의 서로 다른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쥐 한 종으로 따지면 평균 2.7종의 코로나바이러스를 몸에 품고 있다. 음습한 폐가의 지붕 밑에 숨어 파리한 환상과 괴몽을 꿈꾸고 있을 박쥐에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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