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국가 하나돼야 힘 발휘 ‘공동운명체’ 시대
정부, 4대 그룹 ‘한미 정상회담’ 공로 인정하고
국내에 투자 할 수 있도록 분위기 전환 나서야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 RUPI사업단장

신기술과 백신을 두고 미중(美中) 패권경쟁이 심상치 않다. 말이 경쟁이지 사실상 총성 없는 전쟁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여온 한국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反中) 전선에 동참한 모양새다. 우리 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이른바 ‘BBC(바이오, 배터리, 반도체) 산업’에서 공동전선을 구축한 것이다. 이에 탄도미사일 최대 사거리 및 탄도 중량에 대한 제한이 풀려 비로소 ‘미사일 주권’을 되찾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누가 봐도 결국 기업이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움직이게 만든 촉매 역할은 한국 대기업들이 맡아 수행했다. 미국이 추진하는 핵심 산업의 공급망(밸류체인) 구축에 동참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 기업들이 결단을 내린 44조원 규모의 통 큰 대미(對美) 투자로 미국에는 많은 고용 창출로 이어지겠지만, 국내에는 오히려 일자리 감소로 연결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의 밸류체인 전략에 편승해 급성장이 예상되는 전기차, 반도체 시장에서 확실한 성장 교두보를 확보하지 않았는가. 

미국의 전기차 산업은 바이든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으로 향후 가파른 성장세가 예상된다. 이참에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의 GM, 포드 등 완성차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하며 배터리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뒤처진 파운드리 투자에 적극 나선 것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크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탑재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자율주행차 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이 BBC 공급망을 결속하고 6G, AI, 수소에너지 등 첨단기술 동맹을 강화한 것은 중국 저지선을 공동으로 구축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따라 이뤄졌다. 쿼드(GUAD) 참여국인 미국과 호주, 일본, 인도를 지도에서 연결하면 남중국해를 지나는 선이 그려진다. 바로 대륙 세력인 중국의 해양 진출을 막는 저지선이다. 이처럼 앞으론 경제와 안보가 한데 묶이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향후 우리 제조업의 탈(脫)중국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려면 주요 대기업을 제외한 다른 기업들의 생태계가 과연 이런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이미 탈원전을 비롯해 ‘모 아니면 도’ 식의 많은 내로남불 정책을 겪어보았기에. 먼저, 한국 BBC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공급망이다. 이미 우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국제 분업에서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보지 않았던가. 배터리에선 중국이 쥐고 있는 희토류 등 소재 공급망이 중요한데, 이는 여전히 기업만의 숙제로 남아 있다. 바이오에선 기술이전 협력 구도가 뚜렷하지 않다. 또 하나는 중국 경제에 묶여있는 상당수 국내 기업의 생명줄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요즘은 기업과 국가가 하나 되어야 힘을 발휘하는 공동운명체 시대다. 따로국밥은 말도 안 된다. 새로운 환경변화 속에서 기업 경쟁력이 바로 ‘국가의 힘’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떠올랐다. 이번 회담 결과를 잘 살려간다면 분명 한미 양국 관계는 안보를 넘어 경제동맹으로 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또한, 급변하는 국제 정세로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기후변화와 소득 격차, 인구 감소 등 우리가 직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정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지금은 4대 그룹의 통 큰 투자로 바이든의 “Thank you!”를 듣는 데 만족할 때가 아니다. 이번에 우리 대기업이 확실히 정부에 힘을 보탰다는 걸 인정한다면, 다음엔 정부가 기업에 힘을 실어줄 차례다. 무슨 큰 특혜를 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기업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주면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면 된다.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 전환이 정말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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