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채영 현대예술관 큐레이터  
 

높은 천장과 온통 새하얀 벽에 띄엄띄엄 배치한 작품과 오로지 작품만 비추는 조명, 그 공간 속에서 느껴지는 고요함과 엄숙함은 미술관에서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본 경험일 것이다. 보편적인 전시공간은 사각형 형태에 흰색벽면의 구성으로 이를 ‘화이트 큐브’라고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1930년대에 최초로 ‘화이트 큐브’ 전시 방식을 확립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런데 ‘화이트 큐브’는 작품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경건한 마음을 주기도 하지만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미술관은 문턱이 높다”라는 표현도 ‘화이트 큐브’가 한몫하는 셈이다.

몇 해 전부터 ‘화이트 큐브’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습을 한 미술관이 생겨나고 있다. 사방을 창으로 만든 공간, 낡고 오래된 건물과 폐 공장을 탈바꿈한 공간 등 이색적인 미술관이 생겨나면서 전시의 형태도 자유롭게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자칫 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여기서 반드시 뒷받침 돼야 할 중요한 점은 공간과 어울리는 콘텐츠를 가진 전시기획이다. 대중들이 미술관을 찾는 건 결국 작품을 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구에서 근무하였던 전시공간도 한쪽 벽면전체가 슬라이딩 창으로 되어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과 함께 바깥풍경이 그대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창 너머 푸른빛의 풍경과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면서 작품을 감상한 그때의 기억은 마치 ‘삶과 예술이 하나 된 공간’으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되는 전시공간은 현재의 예술을 발전시키고, 또 다른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다양한 전시공간을 만들어내는 발판이 되기에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미술관의 변화와 시도는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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