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름 피아니스트

가을의 시작과 함께 복잡한 머리속 비워낼 사랑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다양한 음악으로 표현돼
에드워드 져먼의 작품 감상하며 가을의 설렘 느껴보길

 

갑자기 가을이다. 늦은 밤 이젠 꽤 차가운 공기가 코끝부터 시작해 온몸으로 느껴지면 기분좋은 차가움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곧 두꺼운 옷을 꺼내 온몸을 감싸버리기 전 가장 반가운 시간의 가장 기분 좋은 차가움에 설레이기까지 한다. 이 설레임을 그냥 떠나 보내버리기엔 아쉬워 리차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뉴욕의 가을:Autumn in New York>이란 옛날 영화를 다시봤다. 오늘의 뉴욕은 바이러스와 홍수로 절망적이지만 영화 속 뉴욕은 아름답기만 했다. 이렇게 나는 혼자만의 가을을 시작했다. 
십년 전쯤 봤던 것 같은데 아무나 할 수 없는 여주인공의 숏컷 헤어스타일이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됐고 낙엽으로 뒤덮힌 센트럴 파크 공원을 두 주인공이 걷는 장면이 아마 포스터 였던가? 어찌됐건 그 당시 젊은 신인 여주인공과 중년배우의 만남도 그러했고 여대생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할 만한 요소는 차고 넘쳤던 것 같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의 끝은 비극이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갑작스럽게 수술을 하게 된 여주인공은 그곳에서 살아나오지 못했다. 죽음이 참 순간이다. 아! 허무하다. 삶이란 것이….
불과 몇시간 전 나의 상태는 분명 이러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이 말을 주저리 주저리 입에서 되새기며 온몸을 비틀다가 생각의 감옥에 갇힌 것 같은 숨막힘을 느끼며,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건만. 가을의 시작과 함께 머릿속은 세상에서 제일 달콤하고 제일 슬픈 남의 사랑 이야기로 멈췄다. 그래서 오늘은 어딘가에서 몸부림 치고 있을 나같은 사람을 위해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남의 사랑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처음 내가 이탈리아에 가보게 된 것은 체코에서 유학하던 20대시절 이였는데 체코에서 오스트리아로 가서 또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새벽 5시쯤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도착했다. 버스로 밤새 가는 게 그렇게 힘들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는데, 그때 이후론 심야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어찌됐건 도착했던 베로나!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 시작은 이렇다. “이름과 명망이 있는 두 집안이 이 아름다운 도시 베로나를 무대삼아 해묵은 원한을 빌미로 틈만나면 싸움을 벌여 이웃의 손과 손에 피를 묻힙니다. 이 숙명적인 원수의 집안에서 한쌍의 불행한 연인이 태어나, 불행히 죽음에 이르니 이로써 두 집안의 부모들의 다툼도 끝이 납니다. 죽음으로 끝맺은 사랑의 이야기” 바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는 도시였다. 사실 그땐 몰랐다. 그저 목적지로 가는 길에 지나가는 도시였는데 이뻐서 마을을 둘러봤더니 줄리엣의 집이 있었다. 
지금은 알고 그땐 몰랐다. 극의 첫 시작인 프롤로그에서 이미 내용을 다 알려주며 시작되지만 사랑 이야기는 결과를 알아도 결과를 몰라도 재밌는 법이지 않겠나. 
사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할 당시 런던은 이런 유형의 이탈리아의 사랑 이야기가 유행이었다. 이런 내용의 설화도 있고 또 이미 비슷한 줄거리의 이야기들이 나와 있었다. 그런 유행을 따라 줄거리에 내용과 등장인물들을 덧붙여 완성시킨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당시 햄릿과 함께 가장 많이 상영되고 사랑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생각하면 첫사랑의 풋풋한 설레임, 강렬한 사랑, 애절함, 안타까움, 비극 이런 것들인데 이런 감정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외면할 수 없었을테고, 많은 음악가들도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소재이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검증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구노의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도 좋고, 프로코피에프의 음악도 너무나 좋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에드워드 져먼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도 한번 감상해 보시길 추천한다. 마치 영화음악 같은 색다른 로미오와 줄리엣의 음악을 느낄 수 있다. 복잡한 머릿속의 데카르트는 몰아내고 오늘은 다가오는 가을을 반기며 남의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져 보는 건 어떨까? 행복한 가을의 설레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서아름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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