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 상당 향응접대 받은 대기업 간부 변호 맡아
계약해지 요구하자 “증거품 경찰에 넘긴다” 협박 혐의
경찰, 증거 압수수색 과정 당사자에 참여 의사 확인 안해
재판부 ‘증거 효력 없다’ 판단 무죄 선고…“수사 허점” 비판

수임계약 해지를 요구한 의뢰인을 협박한 혐의로 법정에 섰던 현직 변호사가 2년여 만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이 경찰 수사단계에서 증거들이 ‘위법’하게 확보됐다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경찰 수사력이 도마에 오르게 됐다. 울산경찰청 핵심 부서가 수사하고, 황운하 국회의원이 울산경찰청장 시절 지휘한 사건이다.

27일 울산지법 형사1단독(부장판사 정한근)은 공갈 등 혐의로 기소된 변호사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말 하청업체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로 입건된 대기업 간부 B씨로부터 사건 변호를 의뢰받았다. 1,000만원가량의 착수금을 받고, 성공보수로 1억원 상당을 계약한 A씨는 B씨가 하청업체로부터 받은 명품 등을 ‘범죄 증거가 될 수 있으니 대신 보관하겠다’며 챙겼다.

이후 B씨는 성공보수금이 너무 비싸다며 계약을 해지하고 보관하고 있던 명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는데, A씨는 ‘증거품을 경찰에 넘기겠다’는 취지로 말하며 의뢰인을 협박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가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가장 큰 이유는 수사기관이 제출한 증거가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출된 증거는 B씨의 휴대전화에서부터 시작됐는데, 이들 자료를 경찰이 압수하는 과정이 ‘위법’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당초 경찰이 휴대전화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집행하는 과정, 압수의 범위 등은 모두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봤지만, 이후 휴대전화에 담긴 전자정보를 확보하는 과정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일반적으로 경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휴대전화에서 전자정보를 확보할 때 현장에서 곧바로 진행하지 않고, 처리가 가능한 장소로 휴대전화를 옮겨 처리한다. 이때 경찰은 당사자에게 ‘압수수색 과정을 지켜볼 것인지’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재판부는 경찰이 B씨에게 이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된다고 봤다. 당시 경찰은 B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한지 4일 뒤 전자정보를 확보했는데, 이때 B씨에게 연락했으나 닿지 않자 임의로 절차를 진행하면서 피의자의 참여권을 침해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경찰은 이후 확보된 자료를 기반으로 다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집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추가 증거를 확보했는데, 재판부는 이들 증거가 모두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기초하고 있다며 모두 증거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2018년 울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현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B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A씨에 대한 혐의점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한 사건(▷2018년 10월 26일자 6면 보도)이다. 지능범죄수사대는 울산경찰청 핵심 수사부서인데다, 2018년도는 ‘광역수사체제 구축’과 ‘전문성 강화’ 등을 이유로 기존보다 인력을 크게 확대했던 시기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앞장섰던 황운하 현 국회의원이 울산경찰청장으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분야이기도 했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도 잡음은 흘러나왔다.

A씨는 자신이 1억원 상당을 법원에 공탁하고 B씨가 이를 수령했는데도, 경찰 수사관들이 ‘피해 복구가 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수사보고서를 쓰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며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황운하 당시 청장을 비롯해 경찰 4명을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실제 경찰이 신청한 A씨의 구속영장은 검찰에 반려됐는데, 이를 두고 불순한 의도가 있는 수사라는 주장과 법조인들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이 한때 맞서기도 했다.

검찰이 황 전 청장 등 4명을 불기소 처분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이번 법원 판결로 당시 경찰 수사의 허점이 다시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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