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7년 박근헤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로 팽목항을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적은 글. 연합뉴스

 

김진영 편집이사

우주강국 실현 벅찬 감격, 정치는 여전히 삿대질 중
명쾌하지 않은 기록 쏟아지는 각종의혹 날선 공방전
종전선언 제의 앞둔 악재에 월북몰이 주장 해명해야

 

 

전남 고흥 우주센터에서 누리호가 대한민국 우주강국의 꿈을 싣고 치솟았다. 37만 개의 부품이 단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실패하는 고난도 기술집약체의 성공이다. 12년을 넘게 러시아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고 극비기술은 시행착오를 수없이 반복한 결과였다. 그 인고의 세월을 거쳐 대한민국은 우주발사체를 자력으로 쏘아올린 7번째 국가가 됐다. 대한민국 첨단 기술력은 우주로 향하는 시점이지만 하늘 아래 여의도는 여전히 여야가 삿대질이다. 이번에는 '세월호 7시간'이 '문재인 14시간'으로 돌아와 온 나라가 시끌하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날 아침,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그가 탄핵당하는 날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주홍글씨였다. 세월이 지나 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우리 공무원 이대진 씨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고 시신이 불타는 만행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생과 청와대 대응까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14시간' 역시 명쾌하지 않은 해명과 쏟아지는 의혹으로 세월호의 데자뷔처럼 평행이론이 되고 있다.

'문재인 14시간'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청와대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사건 당시 군 당국과 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가 국가안보실에 보고한 내용 등 핵심 자료를 공개하면 의혹이 해소될 일이지만 뜬금없이 청와대는 문서 대부분을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과 함께 최장 15년간 비공개되는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했다. 김정숙 여사 옷값 관련 특활비 비공개와 같은 급으로 다룬 셈이다. 열람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사건의 양상이 7시간대(對) 14시간으로 번진 내막에는 정권 따라 실종의 진실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하필이면 실종사건이 유엔연설을 통한 종전선언 제의라는 이벤트 직전에 발생해 관련 의혹이 날개를 달았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는 어떤 사정이 숨어 있을까. 숨겨진 내막이나 감춰진 진실은 당장 파헤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드러난 사정의 키는 해경이 쥐고 있다. 해경은 문재인 정권 시절이던 지난 2020년 9월 29일 "실종자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고, 북측이 실종자를 소상히 알고 있었던 것은 물론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이대진 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 해경이 정권이 바뀌자 유족의 뜻에 따라 다시 수사과정을 면밀히 살핀 뒤 언론 브리핑을 열고 2년전 판단을 뒤집어 버렸다.

해경의 발표 이후 뒤바뀐 여야는 세월호 7시간 때처럼 문재인 14시간을 걸개로 걸고 멱살잡이를 시작했다. 친문세력은 여권이 해경을 동원해 문재인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우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격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에도 김어준이 깃발의 아랫도리를 잡아채고 음모론을 흔들었다. 김 씨는 자신의 방송에서 "(월북사건과 관련해) 특별히 새로 발견된 근거가 없는데 판단을 뒤집고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 건 '문 전 대통령 포토라인 프로젝트'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김 씨의 말은 새로울 게 없어 보이지만 '포토라인 프로젝트'라는 글귀는 김어준이 만들어낸 또 다른 의혹의 프레임이다. 김씨는 마치 이번 논란이 문재인 죽이기의 일환이라는 음모론을 잘 포장하려는 듯 사건을 더 크게 포장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김 씨에 앞서 야권 핵심부는 해경의 발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문재인 14시간 방어를 위해 인의 장막을 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북한군에 의해 살해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진 이대진 씨의 아들이 정색했다. "(이대진 씨의 실종이) 월북인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한가"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우상호 비대위원장에게 항의의 편지를 보냈다. 이 씨 아들은 '우상호 의원님께'라는 제목으로 직접 쓴 손 편지에서 "우 의원의 소속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지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아니다"며 "월북여부가 중요하지 않다면 왜 그때 그렇게 월북이라 주장하며 사건을 무마시키려하셨나"고 지적했다. 이어 "적국에 의해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한 가족의 아픔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정치적 이익에 따른 발언을 무책임하게 내뱉은 것에 국회의원의 자격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우 위원장이 "월북이 아니란 증거를 내놓으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먼저 월북이 확실하다고 얘기한 쪽이 월북의 증거를 내놓으셔야죠"라며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 함부로 월북이란 단어를 입에 올려선 안 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월북 논란이 뒤집힌 시점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SNS 활동을 확대했다. "대통령이 끝나면 그냥 잊힌 사람으로 그렇게 돌아가고 싶다" 던 그의 말은 집 앞에서 실시간 울부짖는 극우세력의 꽹과리에 산산이 부서졌다. 자신이 SNS에 올린 문장이 어떤 파급력을 가지는지 너무나 잘 아는 그는 왜 이 시점에 SNS 공개를 확대했을까. 세월호 참사 당시로 돌아가 보자.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야당 선대위원장이던 문재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며 '박근혜 7시간'을 정쟁의 도구로 삼았다. 그런 그는 세월호 기억교실에서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을,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것은 그것 자체가 또 하나의 탄핵 사유라고 생각한다"며 탄핵의 불을 지폈다. 문재인의 세월호에 대한 집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선 후보였던 2017년에는 팽목항 방명록에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 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1,000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문구를 남겼다. 당장 '뭐가 고맙다라는 말인가'라는 말이 팽목항의 갯바람을 타고 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왜 그랬을까. 문재인 전 대통령은 팽목항에서 세월호에 가라앉은 안타까운 푸른 넋들을 향해 왜 고맙다는 부적절한 단어를 찾아냈을까. 많은 국민은 여전히 이 장면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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