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리는 편안함 속의 함정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앞서 개인의 이름을 내건 '제로웨이스트숍'으로 지역사회와 비엔나 시민들의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례를 취재했다면 이번에는 '유쾌한 고발'로 지역 대표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 낸 숨은 주역을 만나봤다.

오스트리아 빈의 '탄소중립 시대'를 이끌고 있는 또 다른 주인공, 워킹체어스튜디오 디자인회사의 피델 푸조(Fidel Peugeot) 대표다.

그의 프로젝트는 오스트리아 업계 1위 생수 브랜드인 voslauer(뵈슬라우어)를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됐다.

워킹체어스튜디오의 피델푸조 대표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지적, 기업 변화로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플라스틱, 그 중에서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고 접하는 플라스틱은 바로 음료 페트(PET)병이다.

그렇기 때문에 푸조 대표는 페트병을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재료로 삼았다.

 

탄소중립 숨은 주역 피델 푸조 대표 
저탄소 주목 ‘페트 프로젝트’ 계획 
현지 1위 생수업체 지속 접촉 설득
100% ‘PET 리사이클링’ 이끌어내

지금은 알약 포장지 프로젝트 집중
지역 약국과 협업 기업 등 변화 유도

당장 개선없어도 책임감 갖고 시도
무엇보다 시민 인식 변해야 
지속가능한 ‘탈탄소 시대’ 도약

 

워킹체어스튜디오의 BOTTLE BOY

뵈슬라우어와 푸조 대표의 첫 만남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2002년 한 포디움에서 우연히 뵈슬라우어 회장을 만난 푸조 대표는 'bottle boy' 프로젝트를 보여주며 투자를 요청했지만 '우리는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가장 먼저 돌아온 말은 "이걸로 지금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였다. 이어 "우리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당황스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워킹체어스튜디오는 PET 프로젝트를 꾸준히 계속해나갔고 2008년 PET Light Show 전시를 위해 다시 뵈슬라우어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긍정적인 대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워킹체어스튜디오의 PET_LIGHT_SHOW 전시회

그는 "아직 PET 리사이클링에 대해 전혀 말도 안나오고 있었던 시기"라며 "솔직히 말하면 리사이클링 하는 전시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결국 이 페트병으로 생기는 문제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고 밝혔다.

이후에는 뵈슬라우어에서 먼저 기획을 요청해왔다.

푸조 대표는 "우리를 통한 광고 효과도 분명히 고려했겠지만 전시회 이후에는 뵈슬라우어에서 먼저 기획을 제안해왔다"라며 "여기서 시작된 게 생수병 재활용 유도키트인 re_bottle set"이라고 설명했다.

 

푸조 대표가 re_bottle set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re_bottle setT는 총 4개의 조립식 뚜껑으로 이뤄져 연필꽂이, 꽃병, 저금통 등 용도에 맞게 생수병에 끼워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를 시작으로 RE-BOTTLE STOOL, RE-BOTTLE CONTAINER 등의 협업을 이어간 끝에 지금은 뵈슬라우어가 100% 재사용 rePET으로 전환하면서 더 이상 함께 일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푸조 대표는 "20년 전에는 자신의 약점을 내보여선 안된다고 했던 회사가 10년이 지나니 먼저 기획을 제안하며 '이게 우리의 문제지만 개선해 나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또 10년이 지나니 rePET을 개발해 이용하고 있다"라며 "우리를 비롯한 다른 많은 친환경 업체들과의 협업, 그리고 그로 인한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있었기에 천천히라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뵈슬라우어는 2020년부터 12번 재사용 가능한 rePET을 사용해 연간 약 400톤의 원료와 420톤의 이산화탄소를 절약하고 있다. 이 PET는 3~4년 동안 계속 사용될 수 있으며, 반품 가능한 유리병보다 90% 가볍기 때문에 생산, 선적 및 컨테이너 보관 시에도 탄소 발자국 감소 효과가 있다.

뵈슬라우어 측은 "오스트리아인의 대다수는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재사용 가능한 제품을 보길 원한다"라며 "반환형 PET은 수요, 책임감, 혁신에 대한 갈망, 그리고 기술적 전문지식이 어떻게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업계 선두로서 큰 책임을 지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고 밝혔다.

뵈슬라우어는 이같은 탄소 중립적 운영으로 2020년 기준 2005년에 비해 자체 자원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0% 감축시켰으며 2030년까지 배출량을 28% 더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갈 길 먼 탄소중립, 누군가는 계속 문제 던져야

푸조 대표는 PET 프로젝트 종료 이후에도 계속해서 '유쾌한 고발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는 "문제점이 있을 때 이를 알리는 사람이 항상 필요하다"라며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계속해서 전시를 진행하고 있고, 외면하고 싶은 문제점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올리고 있다. 아름답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집중하고 있는 BLISTER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했다. PET 만큼이나 우리 일상생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알약 포장지가 재료인데, 어쩌면 PET보다 더 큰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약국에 설치된 조명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푸조 대표.

 

BLISTER 프로젝트를 제안한 약국의 풍경. 워킹체어스튜디오에서 알약캡으로 제작한 조명을 사용하고 있다.

알약이 담겨있던 플라스틱 캡은 플라스틱 위에 알루미늄 필름이 덧대 있기 때문에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알루미늄 호일을 깨끗하게 분리하면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재질별 분리는 어렵다.

푸조 대표는 "자주 가는 사무실 근처의 단골 약국에서 먼저 제안했다"라며 "약국에서는 이 모든 알약 쓰레기들이 매일 넘쳐 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rePET 개발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는 기술이 발전 해서 복합 재질을 사용하지 않거나, 분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있는데 여전히 전 세계 어딜가나 똑같이 이 플라스틱 캡을 사용하고 있다"라며 "왜 이렇게 포장이 돼야만 하는가가 근본적인 문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우리가 약국과 협업을 해서 2014년부터 전시 퍼포먼스 등을 통해 그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라며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고 지치진 않는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언젠가는 기업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백주희 기자·사진=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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