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는 대화 무분별 외래어 남발 심각해
나라 발전 이루는 근간 ‘언어 통일’ 중요
국적 불명 신조어 자제 정체성 확립 최선

 

 지금부터 7,000여년 전 중국 북동쪽의 광활한 지역에서 홍산(紅山)문화 등 요하(遙河)문명을 이룬 우리 동이(東夷)족은 끈질긴 민족성을 발휘해 수많은 환란을 이기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왔다. 이제 우리는 미래 천년의 세월을 향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잘 보존하고 이를 후손들에게 계승해야 하며, 그 중심에 우리 말과 글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주시경 선생님은 "한 말을 쓰는 사람끼리는 절로 한 덩이가 되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다"라고 하면서 나라를 이루는 근간이 언어 통일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한 나라가 잘되고 못 되는 열쇠는 그 나라 언어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있다"고 해서 한 나라말이 그 나라 발전의 기초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말에서 외래어 침투상황은 너무 심각하다. 정부 주요 정책에서도 거버넌스(governance), 스마트 피쉬 팜(smart fish farm), 로컬 크리에이트(local creator) 같은 외래어가 점점 많아지고, 거리의 간판과 사람들 대화에도 치킨, 블랙박스, 옵션 패키지, 카니발 등 외래어가 흔히 쓰이며, 신문방송 같은 언론도 팩트 체크, 태스크 포스, 워라벨(Work and Life Ballance) 등 외래어 사용이 늘어가고 있어 이해가 힘든 경우가 많다. 말과 글의 근본 기능은 의사소통에 있으므로 누구나 알아듣기 편한 말을 하는 것이 능력있는 사람의 자세다. 
 울산 병영 출신의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은 "쉬운 글, 쉬운 말은 민주주의 발달의 근본 조건"이라 하셨다. 이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서문에 밝힌 한글 창제의 목적과도 같다. 즉 누구나 쉽게 익혀서 각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나타내도록 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영국 쉐필드대학에 가 있을 때, 채소시장에 가서 무김치를 담그는 길고 하얀 무를 보고 상점 주인에게 이를 무엇이라 부르냐고 물어보았더니 "물리(mooli)"라고 말했다. 이를 적기 위해 그 단어 철자를 말해 달라고 했더니,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 정말 어이없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영어는 모음의 표현방식이 자음의 환경과 어원에 따라 달라져서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철자에 자신감을 갖기 힘들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우리말을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글자이고, 한글맞춤법의 원칙도 이를 따르는 것이므로, 누구나 쉽게 적을 수가 있어서 대한민국은 문맹률이 1% 미만이다. 그러나 신문이나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수준인 실질 문맹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라고 한다. 글자를 읽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순우리말이 아닌 어려운 한자어와 외래어를 남용하는 데 있다고 본다. 외래어의 남용은 남북통일을 준비하는 기간과 단계를 가중시킨다. 통일은 다양한 영역의 단계를 준비해야 하는데, 먼저 언어와 같은 문화통합의 사회기반이 잘 구축되면 통일 이후의 수많은 문제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중학생 때 울산 출신 최현배 선생이 쓰신 ‘우리말본’이라는 국어문법 교과서를 사용했다. ‘우리말본’에는 명사, 동사, 형용사 같은 문법 용어들을 이름씨, 움직씨, 그림씨 등 순 우리말로 사용해 이해를 쉽게 한 책이다. 세종대왕, 주시경 선생, 최현배 선생 등과 같은 선각자들의 훌륭한 뜻을 받들어서 우리 말과 글을 소중히 여기고 자자손손 계승, 발전시켜야만 우리 민족의 고유 정체성을 길이 지켜나갈 수 있다고 본다. 우리 말과 글이 민족정체성의 핵심이 돼서 남북통일을 이루고, 언제인가 한반도의 5배나 넘는 요하문명의 광활한 고토를 회복할 힘, 수천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불빛이 돼 우리 민족의 미래를 밝혀나갈 것을 확신한다.

 

박일송 문학박사·통일기반조성 한민족포럼 공동대표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