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전대표와 유승민 전의원. 연합뉴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배신의 정치 비난 목소리 높이는 유승민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 세워 입지 다지기
이준석 유승민 조합, 대권야망 꿈꾸는듯 

 

 지난 1년간의 정치를 돌아보면 단 하루도 요란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조국사태의 그림자가 옅어질 무렵, 법사 이야기와 쥴리소동이 벌어지더니 한쪽에서 욕쟁이와 아랫도리 이야기가 정치판을 분탕질했다. 대선이 끝나면 좀 나아지려나 싶었지만 아뿔싸, 이건 완전히 시궁창 판이다. 이 와중에 느닷없이 이준석의 정치적 대부 유승민이 주가를 올리고 있다. 여권의 대표주자를 뽑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앞자리다. 정치권에서 배신의 코드로 수식어가 붙은 유승민의 반전이다. 그런 그가 과거에 마오쩌둥의 팬덤이던 홍위병을 소환한 적이 있다. 조국 사태가 한창일 때 불의와 편법, 특권과 비리를 옹호하는 대중집단에 대한 손가락질이었다. 당시 유승민은 서초동에 모여든 조국 옹호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마오의 권력 연장을 위해 나온 홍위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근 들어 유승민의 이 발언이 다시 회자하는 이유는 그의 정치적 뿌리가 '박근혜 비서실장'에서 출발했다는 점 때문이다. 유승민이 누군가. 지난 2005년 10월 재보궐선거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유승민은 박근혜의 전략공천과 지원유세로 노무현의 남자 이강철을 따돌렸다. 당시 한나라당은 공천 절차까지 어겨가며 대구 동구을에 유승민을 찍었고 유승민을 위한 보궐 선거로 신예 정치인을 등판시켰다. 그런 그가 10여년 뒤 광화문 광장에 촛불이 하나둘 모여들자 북악의 뒤를 돌아 숲으로 숨어버렸다. 그때는 이미 반(反)박근혜의 선두주자였으니 당연한 일이지 않으냐고 외치고 싶겠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박근혜의 후광에 등짝을 비추는 배신의 유전인자는 감출 수가 없었다.

 말이 나온 김에 홍위병 이야기를 해보자. 1959년 장기집권을 노린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문화대혁명이라는 새로운 기획을 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홍위병의 등장이 바로 이때부터다. 마오는 "부르주아와 자본주의 세력들이 다시 사회로 침투하고 있는데, 이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청년들이 바로잡아야 한다"며 애국청년의 집결을 외쳤다.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팬덤정치다. 개딸이나 양아들의 족보를 자금성 뒤편 어두운 골목에서 만들어 둔 마오는 자본주의에 물든 '주자파' 세력의 척결만이 중화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선동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졸지에 쫓기는 신세가 된 홍위병들에게 다시 한번 혁명의 기운을 불어넣자는 전략이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부패한 자본주의, 타락한 지배층의 타도가 자신들의 유일신인 마오를 살릴 수 있다는 코드에 꽂힌 팬덤세력들은 중국 전국토 여기저기에서 신격화된 마오의 추종세력을 끌어모았다. 그 광기의 집단이 바로 홍위병이다. 

 10여년 전 공자의 고향인 산둥성 곡부(취푸)를 방문했을 때 사당 곳곳에 잘린 비석과 시멘트로 이어붙인 석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홍위병의 흔적이다. 팬덤정치에 재미를 붙인 마오는 매일 밤 홍위병들을 위한 만찬과 선동, 걸개와 구호를 하사했다. 그 첫째가 "옛것은 모조리 숙청하라,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관습을 척결하라"는 지령이었다. 마오의 한마디에 홍위병들은 폭력의 정당성을 얻은 것처럼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수천년 이어진 중화의 문화재와 고서, 고화 등은 모조리 파괴되거나 불살라졌다. 그때 수난을 당한 대표적인 현인이 공자였다. 홍위병들은 공자의 묘를 파헤쳐 봉분을 없애고 묘비와 비석을 갈랐다. 분이 덜 풀렸는지 공자상조차도 도끼로 뭉개버렸다. 참 무례한 일이다. 무례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쓴다.

 문제는 배신의 코드든 팬덤에 대한 비판이든 유승민의 주가가 오름세에 있다는 점이다. 유승민은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차기 국민의힘 당 대표 주자 중 선두로 뛰어올랐다. 일각에서는 이준석의 후광효과라는 이상한 주석도 달았다. 자신의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젊은 피가 이제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여당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어대더니 급기야 자신의 인기까지 끌어올리는 형국이다. 젊은 피를 제대로 찍었다는 흐뭇한 미소가 될지 모르지만 천만에다. 유승민을 지지하는 성향을 분석해보니 지역으로는 호남, 정치성향에선 진보층에서 지지세가 강하게 나타났다. 

 또 다른 문제는 북 치고 장구 치듯 울림통을 키우는 유승민과 이준석의 부창부수다. 자신이 속한 당의 현직 대통령을 향해 '개·돼지' 같은 거친 표현을 사용하고 개혁보수라는 뜬금없는 용어를 만들어 젊은 피의 혈관을 부풀리는 상황이다. 보다 못한 홍준표는 "같은 보수 진영에서 내부 분탕질로 탄핵사태까지 가고 보수 궤멸을 가져온 것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냐"며 유승민을 향해 '박근혜 탄핵 원죄론'까지 꺼내들었다. 

 대선에 나섰다가 예선통과에 실패하고 경기도지사 경선으로 체급을 낮춘 유승민은 그마저 윤의 입으로 선거판을 휩쓴 김은혜에게 지고 말았다. 몰락이었지만 그가 믿는 구석은 따로 있었다. 이준석의 분탕질이 연승으로 이어지자 유승민은 때가 왔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밤마다 페이스북을 뒤지고 메시지를 띄웠다. 배신의 코드가 숙주처럼 번식해 SNS를 달궜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사회·외교안보 정책을 까고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비속어 논란'을 후벼 파기 시작했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윤 대통령님, 정신 차리시라. 부끄러움은 정녕 국민의 몫인가"라고 썼고, 이어서 "막말보다 더 나쁜 게 거짓말"이라며 "'벌거벗은 임금님'은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유승민의 이같은 공격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뻔한 수순이라는 반응과 함께, 배신의 유전인자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문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3시간 행적'을 두고 감사원 서면조사가 나오자 "무례하다"며 멱살을 쥐는 야권을 향해 눈만 꿈뻑거리는 유승민류의 정치꾼들이다. 진영논리에 묻혀 무조건 내편만 드는 정치는 지양해야 하지만 적어도 피아구분이 확실한 상황에서 내부총질에 열 올리는 정치꾼은 뒷배가 홍위병 뿐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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