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업탑은 울산공업센터 건립을 기념하고 울산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난 1962년 건립됐다. 윗쪽 사진은 울산지역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직후 황량한 공업탑로터리 주변의 모습으로, 울산의 관문으로 화려하게 변모한 아래 사진과 비교할 때 50년 세월을 느낄 수 있다.
조그만 농어촌이였던 울산은 5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국제적인 도시로 눈부신 성장을 하면서 대한민국 경제ㆍ산업수도로 자리매김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문제로 공해도시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세계의 롤모델이 될 만큼 환경생태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며 환경, 문화 등 질적 성장을 통해 새로운 100년에 도전하고 있다. 이에 울산 공업센터지정 50주년과 광역시 승격 15주년을 맞아 총 4회에 걸쳐 울산의 성장을 되짚어 본다.

◆울산의 변화

울산은 1962년 2월 1일 울산읍, 방어진읍, 대현면, 하상면 전 지역과 청량면 두왕리, 범서면 무거·다운리, 농소면 송정·화봉리를 합해 울산특정공업지구로 지정, 공포돼 같은 해 6월 1일 시로 승격했다.

1963년 3월 울주군 서생면이 동래군에 편입됐다가 1973년 양산군의 관할로 있다가 1983년 2월 15일 다시 울주군으로 복귀됐다.

1985년에 구제가 실시됨에 따라 중·남구가 설치됐고, 1988년 1월 1일 방어진출장소가 동구청으로 승격돼 3구 40개 동이 됐다.

1991년 1월 1일 울주군이 울산군으로 개칭됐으며, 1995년 1월 1일 울산시와 울산군이 통합됐고 1996년 12월 31일 ‘울산광역시설치에 관한 법률’이 공포돼 1997년 7월 15일 울산광역시로 출범했다.

이에 따라 북구가 신설되고 울산군이 울주군으로 복군돼 4구 1군 체제가 됐다.

이후 1998년 3월 1일 동구 염포동 일부가 북구로 편입됐고, 2002년 남구 무거동 일부를 울주군 범서읍으로, 울주군 범서읍 일부를 남구 무거동으로 각각 편입돼 현재의 체계를 구축하게 됐다.

▲ 지난 1962년 2월 3일 남구 장생포동 납도에서 열린 울산공업지구 설정 기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인구ㆍ주택의 변화

1962년 시로 승격되기 이전의 울산은 태화강 중심으로 인구 8만5,082명(군지역 12만6,653명)의 전형적인 농어촌이었다.

성남동과 옥교동이 도심으로 형성됐고 태화강 남측인 지금의 삼산과 달동은 논과 밭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보였다.

하지만 공업센터 지정 이후 전국 각지에서 일거리를 찾아온 사람들로 넘쳐나면서 울산은 급격히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도시적인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1970년 15만9,340명, 1980년 41만8,415명, 1983년 50만명을 넘어섰다. 이 때만 해도 울산은 같은 경남의 마산시 보다도 행정, 산업,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한 상황이었다.

1997년 시·군 통합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100만명을 돌파했고 2010년 114만2,341명으로 증가하면서 전국 7대도시로 울산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총 가구수는 1962년 1만5,301가구(군 1만7,200가구)에서 2010년 40만5,501가구로, 약 25배 늘어났다. 가구당 인구수는 1960년 5.6인에서 2010년 2.82인으로 감소하면서 핵가족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1962년 출생률과 사망률이 함께 높은 개발도상국형 인구구조에서 2010년에는 출생률과 사망률이 낮고 청장년층의 비중이 높은 도시형 인구구조로 변모했다.

특히, 광역시로 승격된 1997년 1월의 울산 평균 출생인구가 49.9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2010년엔 31.3명으로 출생자 수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엔 32명으로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0년 울산 고령인구는 총인구 109만4,000명 중 6.8%인 7만5,000명을 차지해 고령인구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2040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총인구 105만8,000명 중 30만7,000명인 29%로 2010년에 비해 4배 이상 급등해 전국에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주택의 유형을 보면 1969년 울산여고 앞에 울산 최초로 아파트가 건립돼 이후 1970년 아파트 비율이 0.2%에 불과했지만 이후 단독주택에서 아파트 중심으로 급격히 변모하기 시작했다.

2010년 기준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70%로 늘어났다. 이는 도시 성장과 함께 가구 분화에 따른 가구 수의 급증과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회적 흐름에 따른 것이다.

▲ 지난 1997년 7월 15일 울산시가 울산광역시로 승격, 김영삼 대통령과 심완구 초대 민선 광역시장 등이 현판식을 거행하고 있다.
◆울산의 면적

울산은 1962년 160.77㎢의 면적으로 주거지역 22%, 상업지구 2.84%, 공업지역 15.9%, 녹지지역 0.55%의 비율을 보였다. 이후 수차례의 도시계획 변경을 거쳐 2010년에는 755.43㎢로 4배 이상 넓어졌다.

울산의 총 면적은 서울의 1.7배이며 도미니카공화국(754㎢), 바레인(665㎢)보다 더 넓은 것으로 나타났다.

용도 지역별 면적을 기준으로 보면 1962년 대비 주거지역은 1.8배, 상업지역은 1.6배, 공업지역은 3.1배로 대폭 확대됐다.

특히, 녹지지역 면적은 기본적으로 주거, 상업, 공업지역의 면적이 증가함에 따라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울산은 시역의 확대 및 도시녹지 확보 정책에 따라 녹지지역의 대폭적인 확대가 이뤄져 생태도시로의 기반을 구축하게 됐다.

◆울산의 상징 공업탑

공업탑은 1962년 2월 조국근대화의 염원을 담아 조성됐다. 공업탑은 울산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산업수도로서의 위상을 높이는데 힘의 원천이 됐다.

당시 이 일대는 허허벌판으로 밭이 펼쳐져 있는 울산의 변두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은 울산 교통의 핵심으로 관문적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길은 공업탑을 통해 갈 수 있다. 이는 울산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비전의 제시이며 시작점을 의미한다.

특히, 올 초 울산공업센터 지정 5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100년의 의지를 담은 ‘울산도약 제2선언문비’가 건립되기도 했다.

선언문비에는 ‘1962년 울산은 불굴의 기상으로 산업의 불꽃을 지피며 민족중흥의 초석을 다졌다. 그로부터 반세기! 울산공업센터 지정 50주년을 맞아 울산이 국부의 원천임을 자부하며, 울산의 무궁한 번영을 위해, 통일 조국의 새로운 100년 영광을 위해 다시 한번 힘찬 도약을 다짐한다’고 새겨져 있다.

이처럼 새로운 공업탑 시대를 연 울산은 과거의 영광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인프라 구축과 삶의 질을 높여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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