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홍 나막신 그림=박지영   
 

분홍 나막신

송찬호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꼭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분홍 나막신』(문학과 지성사, 2016)

<감상 노트>

봉숭아 즙이라면 채송화 즙이라면 이토록 처절할 수있을까? 님께서 꽃신이 아니라 나막신을 사온데서 이 사랑의 비극은 시작된 것이다. “옛날 충성스런 장군이 있었다. 전쟁에 나갈 때마다 대승을 거둬오는 장군을 임금님은 무지 아꼈다. 이를 시기한 신하들이 장군과 함께 임금님도 없애버리려고 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장군은 임금님을 보호하려다 칼에 맞아 죽었다. 슬피 우는 임금님 곁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바로 맨드라미였다.” 맨드라미꽃 전설을 빌자면 나막신을 사온 이는 장군이요,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아 발을 맞춘 이는 장군의 아내다. 나막신을 낭군인양 품고 잠들었을 여인!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나막신처럼 늙어갔을 여인이 훤하게 보인다. 글=남은우·그림=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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