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이 되면 T.S 엘리엇(1888~1965)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1922≫의 첫 행 ‘4월은 잔인한 달…’을 인용한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20세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지만, 알고보면 ≪황무지≫는 방대한 양의 상징과 광범위한 뜻을 담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난해한 시 라는 것이 영문학자들의 평가다.

‘죽은 자의 매장', ‘체스 게임', ‘불의 설교', ‘물로 인한 죽음', ‘천둥이 말한 것' 등 5부로 나눠진 이 433행의 장시(長時)는 1차대전의 폐해와 유럽문명 중심인 런던에서 메마르고 생명이 없는 듯한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삶을 처절하게 묘사하고있다. 

그러므로 ≪황무지≫는 전쟁후의 시대적 환멸과 허무사상을 바탕으로한 현대문명의 불모성이 주제이다. 알고보면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은 우리의 편의에 따라 인용하는 것처럼 단순히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다. 

자연 속의 삼라만상이 재생과 부활을 경험하는 4월, 인간도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다시 끝없는 삶의 순환으로 돌아가야 하는 부담과 고통을 역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황무지≫는 육체의 생명이 부활해도 다시 영혼의 생명을 피워낼 수 없는 현대문명에 대한 시인의 진단이다.

엘리엇이 ≪황무지≫를 쓴 100여년이 흐른 지금 새로운 황무지에서는 ‘코로나19’라는 가증스러운 괴질이 거대한 문명을 순식간에 파괴할 기세다. 잔인한 4월, 꽃천지 속에서 새로운 생명의 행진은 다시 시작되는데,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코 앞에 다가온 보궐선거로 시작되는 2021년 4월은 여느 4월 보다 더 살벌하다. 곳곳에서 원색적인 막말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인의 말은 평소 인식의 반영이다. 남은 며칠 간 누가 더 수준 낮은 막말을 쏟아내는지에 승부가 갈릴 수도 있다. 시민들의 관심사는 “누가 더 잘 싸우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준비돼 있느냐” 일 것이다. 유권자들은 ‘매의 눈’으로 후보의 자질과 역량, 비전과 정책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4월의 막말’로 여느 4월보다 더 잔인한 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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