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성천 울산 중구청 반구2동장  
 

 

고정관념·선입견 깨부수지 못하면 큰 세상 못 봐
생각 바꾸면 줄 수 있고 스트레스 안 받을 수 있어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그런 삶 살도록 노력하길

 

우리 언어는 받은 것을 베풀 수 있는 훌륭한 언어다.

지구에서 가장 훌륭한 언어를 가진 민족을 추천하라면 난 당연히 한국인을 추천할 것이다.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다. 우리 언어는 세계의 다른 어떤 언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형용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영어로 레드(RED), 일어로 아까이(あかい)라는 “빨강”을 뜻하는 표현 하나지만 우리는 빨갛다, 뻘겋다, 불그스름하다, 불구죽죽하다 등등 아마 잘 표현하면 몇 십 개는 족히 될 것이다.

이렇게 대단한 우리 언어에 또 하나의 놀라운 기능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대다수 국민들은 모르고, 그냥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나에게 사과를 먹어보라며 권하면 우리는 분명 ”잘 먹을게“라고 답할 것이다. 또는 ”사과 줘서 고마워“라며 감사를 표시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언어는 여기서 도리어 남에게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개념을 가진 표현을 할 수가 있다. 바로 ”고마워, 먹어줄게“라고. 이렇게 말하면 무슨 농담하냐고 하겠지만 아니다. 자세히 보라 분명 사과를 받은 사람이 먹어준다고 베풀었다. 받지 않고 먹어주지 않는다면 친구는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그 친구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마라(주지도 마라).

무작정 “스트레스를 받지 마라“고 말하면 대부분이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필자는 항상 강조한다. 왜냐면 남에게 베풀어도 시원찮을 판에 남에게 받는다는 것은 빚을 지는 것인데, 그것도 건강에 아주 안 좋은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면서 남에게 빚을 진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럼 정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과거 한 성인의 대화 속에서 그 방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2500년 전 인도의 한 성인에게 철학자가 자신의 제자들을 훔쳐갔다고 찾아왔다. 그는 “당신이 뭔데 내 제자들이 나를 버리고 당신의 제자가 되었는지, 어떤 나쁜 방법을 썼는지, 유혹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성인에게 분풀이를 했다. 성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화가 난 철학자가 이성을 상실한 채 욕을 하면서 흥분을 했고, 그때서야 성인이 철학자에게 물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그 선물을 내가 받지 않겠다고 하면 그 선물은 누구 것이냐고?” 그러자 철학자는 “당연히 선물을 가져온 사람 것이지”라며 투덜댔다. 여기서 성인이 말하였다. “당신이 지금까지 내게 와서 한 시간이 넘게 욕설을 섞어가면서 하는 것을 나는 받을 생각이 없다면 그럼 이게 누구 것이겠냐고?”

눈치가 빠른 사람은 벌써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 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스트레스는 상대가 나에게 주는 것이지만 내가 그것을 무시한 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상대방이 다시 챙겨가게 된다. 그게 말처럼 쉬울까 하겠지만 연습을 하면 된다. 처음에는 하루가 걸리던 게 차츰 빨라져 5분 이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이게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내려놓음이다. 좋지도 않은 스트레스 이제부터라도 남이 나에게 주면 받지 말고 내려놓자.

생각을 바꾸자(고정관념을 버려라)

우리는 흔히 사물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지식을 습득할 때 이것이 뭐라고 집어서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종이컵을 들고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고 물으면 당연하게 물을 따라 마신다거나, 커피를 타먹는데 쓰는 일회용 컵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지식이고, 이 지식이 우리들 생각을 틀에 박힌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 매개체다.

여기서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깬 사례를 보자. 종이컵을 촛불 혁명할 때 촛불의 바람막이로 썼다. 그럼 이게 컵인가? 아니다 바람막이다. 또 종이컵에 새싹들을 심어 모종을 하였다. 이게 컵인가? 아니다 화분이다. 우리가 배운 지식이 너무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거기에 한정하여 있다면 결국 이러한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생각을 바꾼 결과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생각을 바꿈으로서 받는 것을 줄 수도 있고, 생각을 바꿈으로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말은 쉽지만 아주 어려울 수 있다. 생각을 바꾸면 받으면서도 줄 수 있는 세상이 열린다. 그런 삶을 살길 바란다.

(하성천 울산 중구청 반구2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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