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 최현배 선생 ‘한글’ 보급·교육에 힘써
중구, 그 정신 계승하고자 한글도시 선포해
한글 사랑에 대한민국 국민 모두 동참하길

 

 

박태완 울산 중구청장

2019년, 일제강점기 속에서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말모이’가 개봉됐다. 유명배우들이 주연으로 나섰으나 누적관객이 286만여명으로 사실상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당시 이 영화를 보고 마음속에 큰 울림을 느꼈다. 공기처럼 함께 했던 한글에 무관심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한글을 지금까지 쓸 수 있게 노력해준 많은 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들었다. 

이런 노력을 쏟은 많은 선조들 중 울산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분이 외솔 최현배 선생이다. 병영이 고향인 그는 독립 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이며, 교육자였다. 그는 영화처럼 사투리 수집을 위해 학생들이 사투리 수집에 활용할 수 있는 전용 수첩 ‘시골말 캐기 잡책’이라는 책을 엮어냈다. “한글이 목숨”이란 글을 남겨 민족의 얼인 한글만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말에 한국인의 마음과 혼이 있다”며 한글의 보급과 교육, 나라 사랑에 일생을 바치셨다. 외솔 최현배 선생과 같은 노력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한글을 쓰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와 같은 고난의 시기를 이겨내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한글의 위상은 달라졌다. 외국인들이 한글이 써진 옷을 입고 다니고, 자신의 몸에 한글 문신을 새긴 해외 유명 연예인들도 등장했다. 이는 한류의 영향도 컸지만 한글이 가진 미학적 우수성의 반증이기도 하다. 세계 속의 한글사랑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재외동포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인 ‘한국어능력시험’의 응시자가 1997년 2,692명에서 2019년 37만5,871명으로 14배 폭증했다. 전 세계 30개국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국외 한국어교육과 한국문화 보급 사업을 하는 ‘세종학당’이 2019년 기준으로 60개국, 180개소에 이르는 것도 이 같은 증거이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모국어 표기로 한글을 채택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한글의 과학성도 이미 검증됐다. 미국 메릴랜드대 램지 교수는 "한글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다른 모든 알파벳이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민족의 손을 거치면서 서서히 변형 개량돼온 것인데 반해 한글은 발명된 글자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세계적인 발명품"이라고 예찬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문호 ‘펄벅’은 자신의 책 서문에서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단순한 글자이다. 24개의 부호가 조합될 때 인간의 목청에서 나오는 어떠한 소리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세종은 천부적 재능의 깊이와 다양성에서 한국의 레오나르드 다빈치라 할 수 있다”라고 적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가치는 실로 대단하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무모한 주장에 대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관련 드라마의 퇴출을 주도하는 사례를 보면서, 많은 국민의 마음속에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내려는 의지가 내재돼 있음을 확인했다. 한복, 한식과 더불어 한글은 가장 한국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특히, 한글은 발명된 과정과 취지가 기록으로 명확하게 남아 있는 전 세계 유일한 문자이며,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명품 문자이기도 하다. 훈민정음 서문에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고 적혀 있으니 중국이 한복 등을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억지를 쓰지는 못할 것이다. 세삼 세종대왕의 선견지명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인 우리 중구는 이런 우수한 한글의 역사적 이야기를 가지고 한글도시로 나가고자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한글도시’를 선포했다. 또 한글사랑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글사랑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도 추진 중이다. 한글역사문화 특구를 만들기 위한 용역에 착수해 10월께는 특구 지정도 신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중구의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상에서 ‘한글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범람하고 있는 외래어는 물론이고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줄임말도 난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한글을 사랑하고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글 제목에 쓴 ‘혜윰’이라는 단어는 ‘생각’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몇 년 전 한글날 특집으로 방영한 모 방송에서 한 여학생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 단어를 좋아한다’라고 말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 감동은 이 학생의 말 속에 담긴 한글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이 전해졌기에 함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의 시작은 그 대상을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생각이 관심으로 키워지고, 사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외솔 최현배 선생과 같은 선조들이 목숨으로 한글을 지켜냈던 것은 한글에 대한 ‘혜윰’에서 시작된 한글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중구는 이제 이 한글을 모두가 더 발전시키고 아끼고 올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혜윰’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그 걸음에 중구 주민은 물론, 울산시민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함께 동참해주시길 진정으로 바라본다. 

(박태완 울산 중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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