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머잖아 등장할 스마트 패브릭…새로운 세탁 방식 속속 개발
전통적 세탁방식 벗어나 인본적 가치 위한 세탁기 고려를
‘세탁’을 넘어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는 디자인 발전 기대 

서비스디자인이 한창 디자인에서 화두가 되던 시절, 혹자들은 집에서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세탁기를 집집마다 두는 대신 공유 세탁기를 제안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옷과 침구류는 우리의 촉각, 시각, 후각 모두와 상호작용을 하는 물건이기에 세탁기를 공유한다는 것은 그렇게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빨래방은 남녀의 썸이 시작되는 낭만, 독서, 그리고 여유의 장소로 그려지지만 현실에서는 사람들의 높아진 위생과 청결 기준, 그리고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세탁기 디자인을 고려할 때 빨래방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그림이 필요해 보인다. 
요즘 수건을 많이 쓰는 집, 아이가 있는 집 등 사용자의 환경과 사용 습관을 인공지능이 인지해 최적의 세탁 코스를 제안하는 세탁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세탁양이 많지 않은 1·2인가구를 위해 스캐너처럼 옷을 틈사이로 넣으면 살균과 동시에 세탁과 건조가 가능한 새로운 세탁방식도 제시되고 있다. 물과 세제 대신 드라이아이스를 승화시켜 습기를 만들어 옷감 안에 공기와 함께 주입하면서 때를 제거하는 원리의 혁신적인 세탁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혼자 살든 가족과 살든 집안에는 샤워실이 있고, 이는 항상 사용되는 공간이 아니니, 샤워를 하는 동안 속옷이나 운동복을 빨래하는 사용자의 행동패턴을 고려할 때 샤워기에 세탁기능을 결합하는 아이디어도 좋아 보인다. 
초음파의 진동을 이용한 세탁 장치도 소개되고 있는데, 비누처럼 생긴 이 녀석은 초음파를 발생시켜 섬유 사이사이의 때를 분리할 수 있다고 하니 여행 때 휴대하기 딱 좋을 것 같다. 최근까지의 세탁기는 주로 더러워진 옷을 깨끗하게 하는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어, 탈취, 항균, 청결의 영역을 커버하기 위해 탄생한 스타일러스가 세탁기 경험의 빈틈을 매워주고 있다. 
머지않아 등장할 웨어러블 기능이 장착된 옷, 특이한 기능들을 갖춘 스마트 패브릭들을 고려할 때 세탁기 가전기업들은 전통적인 세탁방식에서 벗어나 더 세분화되고 다양한 의류 세탁·관리 방식을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보통 한번 빨래할 때마다 150~200ℓ의 물을 소비하는데, 물과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스스로 세탁하는 옷도 개발되고 있다. 
스스로 세탁하는 옷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기술은 물을 밀어내는 성질을 가진 물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연잎이 물방울을 밀어내는 원리를 모방해 물을 밀어내는 나노물질로 옷을 코팅하면 더러워진 옷에 물을 적당히 뿌려주고 물을 털어주기만 해도 때나 얼룩이 분리된다고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세탁기로 빨아 없애려고 하는 세균을 이용해 옷을 깨끗하게 만드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섬유 속의 세균은 때나 얼룩을 분해하면서 옷에 악취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세균을 죽이기 위해 삶는 빨래 혹은 은나노 기술을 세탁기에 적용해왔다. 하지만, 역발상으로 미국의 한 섬유회사는 세균을 박멸하는 대신 섬유 속 땀이나 오염물질을 먹지만 악취를 만들지 않는 세균을 개발, 옷 속에 주입해 세균이 스스로 세탁하는 스프레이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소독이나 방부 성분을 분비하는 향균 세균도, 땀을 먹고 소화시킨 배설물에서 향을 내는 세균도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미래 섬유기술들을 적용한다면, 땀에 흠뻑 젖은 운동복이나 포도주스로 얼룩진 흰 원피스를 걸어두고 세균 스프레이를 뿌리면 몇분만에 세탁, 향균, 탈취, 방향까지 머지않아 가능할 것 같다. 가까운 미래엔 전통적인 세탁기의 정의가 새롭게 세워져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세탁의 경험은 무엇일까? 단순히 때를 빼고 먼지를 제거하고 살균하는 것은 세탁기의 일차적 기능이다. 기본 기능에 사용자들은 더 이상 감동받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개인적 혹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빨래한 옷을 입고 기대하는 경험들을 지원해주는 이차적 기능이 제공될 때 사용자들은 감동을 느낄 것이다. 특히 모빌리티의 혁신과 변화, 인도어 라이프 확대, 공조시스템의 첨단화로 인해 땀을 흘리고 먼지로 오염되는 경우가 점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때를 빼는 전통적인 기능에서 탈피해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에 어떤 경험을 세탁기가 더 더할 수 있는지 고민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개인적 취향의 향기 흡착, 색상을 변화시키는 세탁기, 계절옷의 관리와 보관을 자동으로 가능케 하는 경험들도 고려해볼만하다. 
사람들이 옷으로 신체를 가리기 시작하면서 빨래는 시작되었고, 빨래가 일어났던 곳은 동굴 부근의 개울, 자연이었다. 지금의 세탁기가 놓인 공간에 조명과 사운드 기술이 더해져서 자연의 청정하고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면 어떨까?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SF 영화들을 보면서 몇개월이 걸리는 장시간의 우주여행에서 우주복을 갈아입거나 혹은 세탁하는 장면은 본적이 없다. 우주선은 개별화되고 기능화될 미래 주거공간의 모습과 아주 유사하다. 우주선에서의 세탁 경험을 디자인해 본다면 아마도 미래 세탁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미국 가전제품전시회인 CES에서 소개된 빨래 개는 기계가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국내의 몇몇 가전업체들이 그런 기능이 가능한 세탁기 혹은 새로운 제품의 개발에 착수한 적이 있다. 하지만 빨래를 개는 것이 번거롭고 잘 개는 게 힘들다고 해서 그런 기계를 디자인하려는 그 발상자체가 근대적이다. ‘불편’한 요소를 제거해 ‘편리’ 제공하는 방식으로 세탁기를 디자인하고 마케팅을 하는 기업들. ‘편리’가 궁극적인 사용자경험의 종착지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기업들은 한결같다. 빨래를 정리하면서 엄마에 대한 고마움이 떠오르고, 거실에 모여 빨래를 함께 개면서 평소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의 시간을 갖게 하는 세탁기. 세탁 공간과 행위에 대해 인간적 사회적 경험을 이제는 한번쯤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Maslow)의 인간욕구 피라미드를 보면 그동안 세탁기는 가장 원초적인 ‘생존’, ‘안전’, 그리고 ‘청결’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피라미드의 상위에 있는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사용자의 ‘자아실현’을 도와주는 그런 인본적 가치를 위한 세탁기가 고려될 때다. 가까운 미래에 ‘세탁기’가 ‘세탁’을 넘어 그런 가치 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는 그런 디자인을 기대해본다.

김차중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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