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글 쓰기·책 읽기 닮아 문단에 입단했지만
오는 듯 가는 오동꽃 만개 할 때면 마음 불편해져
마치 당신 딸 게으름을 혼내는 회초리 같아 애틋

 

 

조희양 아동문학가

오동꽃이 피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다니러 오셨나 보다. 

십수년전, 아버지의 임종 소식에 급히 친정으로 가는데 먼 산이 뜨문뜨문 환했다. 연보라 오동꽃이 핀 것이다. 푸른 산에 핀 꽃나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리는 조등 같았다. 얼마나 크고 슬픈 죽음인지 오동꽃 조등을 내건 산은 끝없이 이어졌다. 

부모 돌아가신 지 오래인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나도 이제 아비 없는 자식이 되었어.” 

“온 산이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것 알린다고 오동꽃을 피웠네.” 

자주 친정을 오가는데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꽃이었다. 한번도 꽃이 피었다거나 그 꽃이 오동꽃이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해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슬픈 등불로 눈에 들어온 후 오동꽃은 나의 그리운 꽃이 되었다. 

아버지는 구름 같은 분이셨다. 평생 농사꾼으로 사셨는데도 그 삶이 거칠거나 찌들어 보이지 않았다. 동생 공부시키기 위해 기꺼이 당신을 희생하느라 무학력에, 겨우 굶지 않을 세간만 굴리고 사셨는데도 우러러 높아 보였다. 무슨 까닭에 그리 보였나 곰곰이 헤아려 보면 책 읽고 글 쓰는 아버지가 계신다. 나의 아버지만큼 책 읽고 글쓰길 좋아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것이 문학 혹은 처세술 부류의 책은 아니었다. 쓰기 또한 창작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사랑하고 즐겨 읽었던 책은 유교의 덕목을 정리한 책들이었고, 그 책을 베껴 쓰는 필사에 불과한 쓰기였다. 

그것들을 향유하는 즐거움은 컸다. 동생 때문에 눌렀던 학구열을 그리 누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셨나 보다. 얼마나 그 일이 재미있으면 한낮 대청마루에서 오수를 즐길 때도 손가락을 붓 삼아 허벅지에다 글을 쓰셨을까. 

아버지는 오토바이 사고로 경추가 손상되어 전신마비로 8개월을 병상에 계셨다. 연로한 아버지 몸이라 회복이 힘들다는 의사의 진단을 인정하면서도 의사보다 더한 능력자가 건강한 아버지로 돌려주리라 기적을 꿈꾸었다. 실낱같은 희망은 끊어질 듯 위태로웠고 어느새 그 자리에 욕창이 꽃처럼 피기 시작했다. 세상에 삿대질하며 살지 않은 아버지는 당신의 불행한 사고를 이해하셨다. 세상 살며 험한 일이 나만 비켜 갈까. 그러다가 분노했다. 감히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 대상 없는 그 분노는 오래가지 않았다. 세속의 욕심은 몸에 끼는 때와 같아서 일찍이 들이지 않았던 아버지는 생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으셨다. 한가지만 빼고는. 

“펜으로 글을 딱 한번만 써 봤으면.” 

큰오빠와 나는 웃었다. 당연하지요, 당연하지요. 급히 볼펜과 종이를 준비해 아버지를 일으켰다. 아버지의 두 눈이 빛났다. 병상에 누워 계시는 동안 잊고 있던 힘 있는 아버지의 눈빛이었다. 부축을 받아 앉은 아버지는 긴장하셨다. 고르지 못한 숨을 진정시킨 뒤 드디어 아버지는 볼펜을 잡으셨다. 아니 아버지의 손가락에 붙이듯 끼운 볼펜이었다. 내가 손을 떼는 순간 볼펜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른 볼펜을 줍는데 눈물이 솟구쳤다. 아버지가 보실라, 깡소주 들이키듯 꿀꺽 눈물을 삼켰다. 그렇게 아버지는 좋아하는 쓰기를 못해 보고 돌아가셨다. 

오동꽃은 오는 듯 가는 꽃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짧은 봄의 허리께 피어 봄을 온통 누리지 못하고 지는 꽃이, 농사꾼으로만 살기엔 품은 이상이 높았던 아버지를 보는 듯 애틋하다. 

갓 피기 시작할 때 반갑기만 하던 오동꽃이 여기저기 만발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여섯 자식 중에 넷째인 내가 아버지의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렸지만 변변한 작품이 없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딱한 번만 하고 싶은 일, 꺼질 듯 빛나던 두 눈, 뻣뻣한 아버지 손가락에 볼펜 끼워 드릴 때의 촉감, 이 모두를 순식간에 배신하고 떨어지던 볼펜 소리. 차마 눈물로 아버지를 볼 수 없어 명랑하게 볼펜 줍던 일. 

그 모두가 내게 화인처럼 찍혀 있건만 나의 글쓰기는 골방의 궤짝처럼 변화가 없다. 그런 내게 주저리주저리 매단 오동꽃은 당신 닮은 딸자식의 게으름을 치는 아버지의 회초리 같다. 꽃이 사랑의 회초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오동꽃이 전해준다. 

(조희양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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