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워라밸’ 갈수록 모호해져
작금의 과도기 지나 삶-균형 기준 잘 세우길
오늘도 충실히 살며 ‘슈필라움’ 확보 점검을

 

이민정 울산강북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 팀장

겨우내 황토색 일색이었던 논밭에 여린 잎들이 점점이 나타나다가 지금은 왕성한 생육을 자랑하는 경작물과 모내기를 위해 물을 가득 댄 논의 풍경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강북교육지원청 너머 논밭 사이에는 울산공항이 있다. 근무 중 집중이 흐트러졌을 때 창밖을 바라보면, 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볼 수 있다. ‘부와앙’하는 시원한 방귀소리와 함께 설레는 마음을 싣고 비행기가 날아가고, ‘고오오’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낮게 날아온다. 집이란 그렇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지만, 결국 지친 몸을 편히 쉬려 돌아오는 곳도 집이다. 

코로나 이전 일상적인 가정의 오전 풍경은, 자녀의 잠을 깨워 학교로 보내고 부모는 돈을 벌러 직장으로 출근하는 등 각자의 공간으로 출발하는 모습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시간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자녀를 챙기기 위해 부모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졌다가 저녁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코로나가 휩쓴 지금은 가족들이 공간의 이동 없이 자고 일어난 집안에서 부모는 재택근무로 각자의 업무를 처리하고 자녀는 온라인 학습으로 공부를 하고 점심 식사 시간 등 나머지 시간까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코로나로 인한 지금의 현실은 가상현실 영화를 체험해 보는 듯하다. 영화 같은 현실 속에서 삶의 전반적인 방향이 바뀌었다. 직장인은 사무실 출근 대신 재택근무가 늘어났고 학생들은 가정에서 온라인상에서 출석체크를 하는 등 주된 삶의 공간이 집으로 변화되었다.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의 수레바퀴가 느슨해졌고, 공간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Work Life Balance’는 일과 가정 또는 휴식을 적당히 잘 조화시켜야 일의 능률도 오르고, 근로자의 삶의 질이 높아져 행복한 사람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개념이라고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다’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기준으로 균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까.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으로 가족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안에서 자신만의 공간이 더욱 절실해졌음은 워라밸의 기준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주무관의 이야기다. 재택근무 들어가기 전 사무실 전화를 개인 전화기로 착신전환을 돌린다. 업무담당자를 찾는 민원전화를 받기 위함이다. 사무실에 있을 때는 전화가 그렇게 많이 오는지 느끼지 못했는데,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중에 받는 전화는 온종일 전화만 받고 있는 기분이라고 한다. 종이 자료를 가져오기 힘들어, 미처 챙겨오지 못한 자료의 부재와 엄마가 집에 있으니 원격수업을 하는 아이는 당연히 엄마 껌딱지가 되려고 하여 업무 진행에 있어서도 불편함이 있었단다. 업무담당자와 엄마의 역할이 충돌하는 이 지점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은 어쩌면 다른 한쪽의 희생을 전제로 성립되는 것은 아닐까.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김정운 교수는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쳐진 독일어 ‘슈필라움(Spielraum)’을 말한다. ‘슈필라움’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하며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로 이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다고 한다. 

김정운 교수는 지친 하루를 성찰하며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라는 것이다. 

의도치 않게 밀려서 코로나 이후 삶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었지만 이제 되돌아갈 수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기존 방식이 변화되면서 우리의 사고방식도 바뀌었고,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에 대한 개념과 역할도 변화했다. 일과 삶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공존한다.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의 과도기를 지나면서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기준을 잘 세워 열심히 일하는 공간과 쉴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어야겠다. 다시금, 연초 세웠던 계획은 잘 지키고 있는지, 가족의 슈필라움은 확보되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겠다. 오늘을 충실히 살자. 

(이민정 울산강북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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