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만 전 의원은 “어려서부터 선친을 본받아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려 노력했다. 책을 접하는 이들이 내가 했던 것처럼 주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열심히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이수만 전 의원은 “어려서부터 선친을 본받아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려 노력했다. 책을 접하는 이들이 내가 했던 것처럼 주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열심히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이수만 전 울산시의회 부의장의 회고록 ‘함께하는 삶’  
 

“나이가 들면 잔소리가 많아진다고들 합디다. 나이 80에 귀여운 손주들에게 할아버지가 큰일은 못했지만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면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돼 용기를 냈습니다”
울산광역시의회 초대와 2대 부의장을 지낸 이수만 전 울산시의원이 회고록‘함께하는 삶’을 냈다.
평소 후손들에게 남겨줄 선물로는 회고록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그동안의 삶이 글로 남길 만치 특출하지 못했고 자료도 넉넉지 않은데가 더욱이 글재주가 없다보니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집안 아우(제종)인 울산과학대 이수식 교수가 ‘산수(傘壽)’를 맞아 회고록을 쓸 것을 권유했고, 용기를 냈다.
그는 본적이자, 현재 거주지인 남구 신정동에서 이름을 따 ‘신정(新亭)’이라는 아호를 붙일 만큼 울산에 대한 애향심이 깊다.
1979년 울산 JC청년회 회장을 맡으면서 울산지역발전에 앞장섰고, 울산광역시의회 초대와 2대 부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울산광역시 승격추진위원회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또 2002월드컵 울산유치추진위원 등을 비롯해 대한적십자사 울산광역시지사 제4~5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평생 울산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앞서 1997년에는 ‘신정장학회’를 설립, 신정동 지역에 거주하는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학업에 전념말 수 있도록 했는데 지금도 이 사업은 지속되고 있다.
회고록의 표지는 태화강을 사이에 두고 울산 남구와 중구를 연결하는 태화강국가정원 십리대밭교 전경을 담은 사진이다.
그는 평소 태화강 보존에 앞장서며 울산 남구시민이 태화강 대숲을, 중구시민이 남산을 산책한다면 시민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생각해 왔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지난 1980년 당시 이순동 울산시장과 함께 일본 이와구니시를 방문했고 이때 시가지 입구에 있는 긴다이교를 보고 울산시에 인도교 설치를 제안했다.
이후 직접 나서 경남은행과 논의 끝에 기부를 이끌었고, 신설될 다리 이름 공모에도 참여했다. ‘황용연교’ ‘황용교’ ‘원당교’ ‘송도교’ 등 다양한 이름을 제안해 2위 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니 그에게 ‘십리대밭교’는 지난 삶을 돌아 볼 때 대표적 ‘사건’으로 떠오르는 것은 당연지사다.
회고록은 몸이 허약해 걱정이 많았던 학창시절, 한국알루미늄 입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젊은 시절, 주유소 사업과 울산 JC활동, 검찰청 청소년 선도활동과 법무부 교정협의회 참여, 태화강대숲 보존 활동, 대한적십자사 울산광역시지사 활동, 의정활동, 신정장학회 활동, 학성이씨 뿌리 찾기 활동, 아내의 내조와 가족이야기 등과 함께 표창 수상내역, 사진 속 추억, 언론에 비친 모습 등을 담았다.
회고록 서두에서 박종해 전 울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은 “평생 사회와 이웃을 위해 일하며 태산북두 같은 업적을 남겼는데도 항상 겸손해 하는 ‘현대판 군자’”라고 그를 평가했다.
이수만 전 의원은 “어려서부터 선친을 본받아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려 노력했다. 책을 접하는 이들이 내가 했던 것처럼 주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열심히 살기를 바란다”며 “글을 쓰면서 가능한 내 자랑을 빼려고 했지만 회고록이다 보니 자랑이 있을 수밖에 없는 점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넓은 아량을 구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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