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생활과 심리를 은밀하게 조작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고 한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은 1938년 영국에서 공연된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했다.
영화로도 각색된 이 연극은 아내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남편이 온갖 속임수와 거짓말로 멀쩡한 아내를 정신병자로 만드는 과정을 그렸다. 남편은 집안의 가스 등을 일부러 희미하게 켜놓고 아내가 어둡다고 할 때마다 “당신이 잘못 본 것”이라거나 “왜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고 계속 핀잔을 준다. 또 주변 환경을 교묘히 조작해 현실감을 잃도록 해 가해자에게 의지하게 만든다.
‘가스라이터’는 대개 다섯가지 술수를 쓴다. 우선 피해자의 말듣기를 거부하거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타박한다. 상대의 기억에 계속 의혹을 제기해 혼란스럽게 한다. 피해자의 생각은 무시하고 주제를 바꿔버린다. 상대의 요구나 감정을 하찮게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잊은 척하거나 과거에 합의했던 사실도 딱 잡아뗀다. 
자식에게 의견을 주입하는 행위, 직장 상사의 언어폭력, 성범죄자(sex offender)가 피해자로 하여금 당연하게 여기게 길들이는 행위도 가스라이팅에 속한다.
성추행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이모 중사의 유족 측은 “이모 중사가 장모 중사 사건까지 포함해 5년간 세차례 추행을 당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 중엔 성추행을 은폐하려고 회유에 가담한 자도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우리 군의 성추행 자정 능력을 그대로 드러낸 모습이다.  
여군을 동료가 아닌 여성으로 성적 대상화하는 마초문화, 상명하복의 폐쇄적인 우리나라 군사문화는 군을 성폭력의 온상으로 만들어 왔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부주의를 탓하는 등 ‘가스라이팅’으로 사건 은폐에만 급급해왔다. 
그 부대 상관들은 “사망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커질 사안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뒷얘기도 들린다. 누군가 죽어야만 그 고통에 귀 기울이는 사회는 너무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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