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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한민족 정체성과 문화를 이끈 한글 신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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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일송 통일기반조성 한민족총연합 사무총장·문학박사
  • 승인 2021.09.22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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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송 통일기반조성 한민족총연합 사무총장·문학박사

극동 연해주와 중앙아시아의 한민족 (중)

日 식민지배·탄압·멸시 못견뎌 이주한 사람 많아
간도·연해주·중앙아시아 지역에 상당수가 고려인
한글신문, 어려운 시기 민족정체성 심는 데 앞장

홍범도 장군 서거 당시 모금운동 주도해 동상 건립
조국 독립과정에서 겪은 슬프고도 자랑스런 역사

 

1909년 9월 청국-일제가 맺은 간도협약이 올해로 112년이나 지났다. 
고구려와 발해 시대에 간도가 우리 영토였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한민족 국토회복 차원의 접근에서 간도와 연해주, 중앙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한다. 
현재 연해주-중앙아시아 주민들 국적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이지만, 이들 상당수가 고려인이며 한글과 민족문화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들이 우리 언어와 문화를 지키는데 중심적 역할을 했던 한글 신문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려 한다. 
우리 민족이 처음 러시아 땅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은 1860년께로 보며, 1910년 한일합병과 1919년 삼일독립만세운동 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제 식민지배의 탄압과 멸시를 견디지 못해 만주와 연해주 땅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많아졌고, 당시 우리 지식인들은  “어떤 민족이건 정신문화의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결국 현지에 동화된다는 사실”을 잘 인식해 민족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어려운 이 시기에 민족정체성과 독립정신을 심어주는 큰 역할을 한 것이 한글 신문이다. 
이들이 주도해서 주민여론을 형성하므로 독립운동에 앞장설 수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 중심으로 1907년에 「해조신문」을 창간했고, 이어 「대동공보」, 「대양보」, 「권업신문」이 발간됐으나 약 15년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폐간됐다. 
그 후 1922년  러시아 공산당위원회가 허가한 「붉은기」와 「투쟁」 이란 공산주의 신문도 나왔다. 
그리고 1923년 3 월 「선봉」이라는 신문을 창간한 후 「삼월일일」이란 이름으로 변경했으며, 당시 이런 신문들은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려 했다고 생각된다. 
러시아 중앙독립도서관 자료에 의하면 「선봉」은 창간 8년 만인 1931년에 1만 부를 발행했고, 연해주에서 발간된 다른 한글 신문들인 「적선」, 「노동신문」, 「스탈린의 길」, 「연해주 어부」 등도 러시아 연해주 한인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면서 문화생활을 이끄는 역할도 했다. 
그 당시 복잡한 정치-사회적 격변 속에서도 동포들에게 반 일제 사상을 일으켜 조국의 독립을 추구하면서도 민족문화와 전통 의식뿐만 아니라 한민족 언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큰 사명을 한글 신문들이 했던 것이다. 

소련이 1937년에 한인들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은 큰 비극이었다.
이때 우리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피살당하거나 행방불명 되므로 신문들도 폐간됐고, 동포들은 지금의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쫓겨갔다. 
강제 이주를 당한 17만여명의 고려인들의 350여개의 조선인학교와 조선사범대학도 모두 폐교되므로 민족문화와 언어의 바탕도 빼앗기게 됐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언론인들은 한글 신문이 발간되지 못하면 한민족 역사에 큰 죄를 진다는 것을 알았고, 허가 과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1938년 5월 소련 공산당 선전을 위한 「레닌기치」란 이름으로 다시 한글 신문을 만들었다. 
당시 이 신문의 초기 발행 부수는 약 6,000부였으나, 카자흐스탄에 10만여명 살고 있던 고려인들 수요 충족을 위해 점차로 발행 부수를 증가시켰다. 
나중에는 우즈베키스탄 지역 공산당 기관지의 지위를 얻어 소련에서 발간되는 유일한 한글 신문이 됐다. 
강제 이주 후 다시 살아남은 한글 신문은 민족 문화의 유일한 전달자 역할을 했다. 
비록 엄격한 검열 때문에 공산당 선전물 역할도 했지만, 조국 해방 후 1978년까지 소련의 유일한 한글 신문이었기에, 고려인들이 문학작품이나 평론을 이 신문에 모국어로 발표하는 등의 중요 역할을 했다. 
이런 신문이 없었다면 러시아 여러 소수민족들과 마찬가지로 고려인들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의 원주민들에게 흡수돼 민족정체성도 사라졌을 것이다.  
당시 신문들은 한민족의 아름다운 풍습을 보존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예를 들어 장례와 환갑잔치, 결혼식과 돌잔치 등을 어떻게 치러야 한다는 등 한민족의 의례를 신문에서 알려주었다. 
아울러 현지 고려인 인물들의 역사적 업적들을 많이 보도해 청년들의 민족 자주성과 독립사상을 높이는 일에도 많이 주력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된 오늘날 한민족통일을 위해 쏟는 우리들의 관심과 자세가 너무 소극적이어서 부끄러워진다. 
지난 2021년 8월 독립운동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서거 78년이 지나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찬란한 공적을 세우신 홍범도 장군이 생애 마지막 시기를 보내신 곳도 카자흐스탄 지역이다. 
조국 독립을 목전에 둔 1943년 10월 먼 이국땅에서 돌아가시자, 당시 한글 신문사는 지방 기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금 운동을 주도해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공동묘지 홍범도 장군 묘역에 그분의 동상을 건립했다. 
조국 독립과정에서 겪은 한민족의 슬프고도 자랑스러운 역사다. 

박일송 통일기반조성 한민족총연합 사무총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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