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베네수엘라 화폐 볼리바르는 10월 1일부터 ‘0’을 6개 빼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가치 액면 절하)을 단행했다. 연간 물가 상승률이 3,000%에 달하자 내린 조치로 100만 볼리바르 짜리였던 지폐가 1볼리바르로 가치가 폭락했다. 이로써 최근 13년 새 3차례 화폐 개혁을 통해 볼리바르에서 총 14개의 ‘0’이 사라졌다.
100만 볼리바르라고 해봤자 달러로 환산하면 24센트(약 300원)로 700만 볼리바르가 고작 빵 한덩어리 값이다. 수백만 볼리바르의 월급을 받는 교사들은 2주에 3달러도 채 벌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돈이 최고 가치인 거품 같은 욕망’ ‘잔혹한 서바이블 경쟁’이라는 당대의 사회·정치적 문제로 폭발적인 공감을 얻으면서 세계 시청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드라마는 양극화 등 이미 일상으로 파고든 사회 구조적 문제를 건드린다. 456억원을 따기 위해서라면 규칙이나 도덕쯤은 쉽게 저버린다. 돈 때문에 동료를 속이고, 경쟁자를 짓밟으며, 급기야 목숨까지 빼앗는다. 요즘 벌어지는 부조리와 다를게 없다.
하지만 게임에서 456억원을 손에 쥔 주인공이 은행지점장에게 빌린 만원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그 돈으로 꽃을 사며 그 꽃 덕분에 죽은 줄 알았던 ‘깐부’와 재회한 후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456억원을 가진 부자가 된 후에야 비로소 만원의 가치와 무게를 깨닫게 된다는 얘기는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극소수 민간인이 별로 한 일도 없이 7,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개발 이익을 챙기고 수백억대 뇌물을 주고받은 대장동 ‘오징어 게임’은 고작 456억 ‘쩐의 전쟁’ 드라마를 우습게 만들었다.
오징어가 위험에 처하면 먹물을 뿜어대니 까마귀를 뜻하는 ‘烏’를 쓰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김만배라는 화천대유 소유주는 천화동인 1호의 배당금(1,208억)에 대해 “절반은 ‘그분’ 것이다. 너희도 알지 않느냐”는 취지로 녹취록에서 말하고 있다. 위험에 처하면 먹물을 뿜어내듯 대장동 ‘오징어 게임’의 ‘그분의 모습’은 뿜어낸 먹물에 가려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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