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북구 중산동 청동기 시대 취락유적지  
 
   
 
  ▲ 동북아 수전경작 역사를 바꾼 울산 옥현지구 선사유적 발견 당시 사진  
 
   
 
  ▲ 발견 당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 울주 검단리 청동기 유적지  
 

1 ? 훼손과 방치의 현장이 된 선사문화의 보고

지난달 울산에서는 선사 유적으로 추정되는 문화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현장은 울산시 울주군 굴화리 산재전문 공공병원 건립사업 부지다. 이 곳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신라와 조선시대에 이르는 광범위한 문화재가 발견됐다.
현재 정밀조사 중이라 규모와 가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굴화리가 가진 장소성은 상당한 문화 유산이 나올 가능성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 현재까지 나온 것은 선사시대 주거지와 신라 이후의 집터 등으로 알려진 상태다.
걱정스러운 것은 지난 2000년 이후 울산에서 발굴조사된 선사이후 조선조까지의 문화재 대부분이 발굴 보고서나 간이 전시실 정도로 보존의 시늉만 낸채 묻거나 갈아엎었다는 점이다.
고고학계에서는 울산의 중산리와 조일리 다운동 유적과 검단리 유적 등을 두고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보고라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울산은 한반도에서 석기와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선사문화의 다양한 모습들이 골고루 분포한 몇 안 되는 지역이다.
선사문화 1번지라 불리는 대곡천은 암각화부터 석기문화, 토기 제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용연부터 서생 일대 해안가는 말 그대로 선사박물관이다. 서생 신암리와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등지는 구석기부터 신석기 시대에 이르는 유물과 유적이 켜켜히 쌓인 문화재의 반도체라 할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울주 검단리와 북구 중산동 등지는 한반도 최대의 청동기 문화가 꽃핀 흔적이 수도 없이 묻혀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수많은 선사의 흔적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까. 그나마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되는 유물은 전국의 박물관에 흩어졌고 나머지는 제대로 가치를 규명하지 않은채 덮거나 방치한 상태다.
지난해 겨울 문화재청은 북구 강동 일대에서 쏟아진 청동기 집터 등 선사유적지를 보존가치가 없다고 덮었다. 벌써 수십번째 벌어진 만행이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무수히 발굴된 울산의 선사시대 이후 주요 유적지를 파묻거나 밀어버리거나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만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했다.
지난해 덮어버린 체육시설 부지의 청동기 유적은 집터와 토기류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였다. 울산문화재연구원이 시행한 지표조사 결과다. 이곳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터와 조선 시대 숯가마, 용도 불명의 수혈(땅 아래로 판구멍) 등 56기의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확인됐다. 또 청동기 시대 석부, 석촉, 석검, 무문토기, 조선 시대 자기 등 68점의 유물도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이 일대의 발굴을 두고 보존할 정도의 가치는 아니라며 덮었다. 흔하게 나오는 석물이나 토기가 핵심이 아닌데도 뭉갰다. 이 유적의 핵심은 평지가 아닌 산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집터다. 산지의 청동기 집터는 드물다. 보존가치가 충분하다는게 문화재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울산의 구석기 유적은 가장 오래된 벼농사 유적과 구석기들이 발굴된 옥현주공아파트와 KTX울산역 공사 중 발굴한 신화리유적, 조일리 일대 선사유적이 대표적이다. 울산의 신석기시대유적은 황성동 세죽유적, 성암동유적, 신암리유적, 우봉리유적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황성동 세죽유적은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당시 사람들이 채취했던 조개류와 동물뼈, 도토리 저장공, 반구대암각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고래뼈 등이 확인됐다. 하지만 그 발견의 현장은 대부분 개발의 현장이 됐고 유물과 유적은 훼손과 방치로 잊혀져 가고 있다.
옥현유적지의 훼손은 참담한 사건이다. 일본 사학계가 울산 옥현 유적의 수전경작지가 발견된 이후 자신들이 벼농사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던 목소리를 거둬들일 만큼 엄청난 발견이었다. 그런데도 문화재 당국은 옥현유적에 대한 추가 발굴과 보존 노력을 하지 않은채 유적전시관을 만들어 소규모 전시를 해오다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그마저 문을 닫아버렸다.
이 뿐이 아니다. 울산 북구 중산동, 온산면 산암리, 언양읍 동부리, 삼동면 둔기리, 온양면 삼광리, 상북면 덕현리, 동구 일산동, 중구 다운동, 삼남면 방기리 등지에서 각종 선사유적과 유물이 연구기관과 대학박물관에 의해 발굴됐다. 모두가 이 땅에 사람이 살게 된 흔적이다. 남부권에서 전라도지역과 함께 고인돌이나 청동기 유적이 가장 많이 드러난 지역이 울산이다. 무엇보다도 울산지역에서 고대 인류사를 규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다.
울산의 선사유적에 대한 본격 발굴조사는 196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이뤄진 울주군 온양 삼광리유적이 최초다. 이후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이뤄진 유적은 110여 곳이고, 출토된 유물만 6만여 점에 달한다. 불행하게도 이들 유물을 보관·관리할 박물관이 없었던 이유로 출토 유물의 거의 대부분이 외지로 빠져나갔다. 그 수량은 대략 전체 출토 유물의 80%에 육박하는 4만7,000여 점이나 된다. 이 중에는 신암리유적의 덧무늬토기와 황성동유적의 이음식 낚싯바늘 등 신석기유물을 비롯해 외광리유적의 동물무늬 굽다리항아리, 대대리 하대유적의 청동솥, 중산동유적의 오리모양토기 등 보물급 유물이 다량 포함돼 있다.
작은 유물 하나로도 침소봉대하는 일본이나 유럽의 문화 콘텐츠 활용정책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상황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울산에서 벌어졌다. 이대로 방치하면 활용을 커녕 훼손의 뭇매만 맞고 있는 반구대암각화의 전철을 밟게 된다.
본지는 이같은 선사유적 훼손의 실태를 ‘방치된 울산의 선사문화유산, 활용방안 찾아라’라는 기획시리즈를 통해 살펴보고 그 훼손의 현장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를 고민해 보려고 한다. 제주부터 휴전선까지, 대한민국 선사문화의 현장을 살피고 그 활용의 현장을 통해 울산 선사문화의 좌표를 새롭게 찍어보려고 한다. 이번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획공모 사업의 지원으로 이뤄진 것임을 밝혀둔다. 김진영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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