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권력을 양보하는 듯한 파격을 보였다. 한국은행 출신인 김재익 경제수석에 대한 무한 신뢰의 표시였다. 지난 1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해 역풍을 맞았다. 지금은 대선후보가 된 윤 전 총장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전문가를 등용해 시스템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해명했지만 ‘전두환 옹호’ 논란이 거세게 일어 사과했다.
김재익 경제수석은 원칙주의자였다. 대통령에게 이중곡가제 폐지와 쌀 시장 개방을 제안했다. 아주 민감한 문제였지만, 대통령은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힘을 실어 주었다. 쌀 시장 개방에 이어서 과일과 쇠고기 수입도 늘렸다. 그러자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담당 장관이 대통령 외국 순방도 따라가지 못한 채 농심을 달래야 했다.
1983년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은 동남아와 대양주 6개국 순방길에 올라 미얀마(버마)를 먼저 방문, 독립전쟁 영웅 아웅산 장군 묘소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전 대통령 도착 몇분 전인 오전 10시 28분 북한 공작원들이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서석준 부총리, 김재익 경제수석, 취재진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장관 대신 수행한 농림 차관도 숨졌다.
후일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머리였던 덕분에 전 대통령이 살아남았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행사장이 좁다는 이유로 장세동 경호실장의 요청으로 전 대통령과 함께 도착하기로 한 함병춘 비서실장이 먼저 현장에 도착, 북한 공작원이 대머리 함병춘 실장을 전 대통령으로 착각해 폭탄 스위치를 눌렀다는 얘기다.
38년 전 아웅산 묘지에서 몇분 차이로 죽음을 모면한 전두환 전 대통령(1931~2021)이 11월 23일 아침 자택에서 쓰러져 유언도 못남기고 별세했다. 지난 10월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때는 말없이 눈물을 보였다. 명(命·목숨)을 다한 두 전직 대통령은 영욕의 삶을 뒤로하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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