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채영 현대예술관 큐레이터  
 

손끝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득 안고 화가 이영철 선생님 작업실을 찾아간 기억이 난다.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물감 냄새와 땀과 열정이 묻어있는 흔적의 공간 속에서 짜릿한 전율을 느꼈었다. 그림이 마냥 좋아서 미대를 갔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큰 소질이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에, 작품을 보는 안목을 키워 전시기획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선생님이 내어주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한 모금씩 마시면서 왠지 모를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빼곡히 쌓인 작업의 흔적들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작품들을 보며, 이 좋은 작품들을 세상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후로 기회가 닿으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작가의 작업실에 문을 두드렸다.

사실 작가의 모든 것이 깃든 작업 공간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은 매번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미술 현장에서 일하면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것만큼 설레고 즐거운 일은 또 없다.

작품이 그려지는 과정, 그리고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된 손때 묻은 작업 도구를 보면서 작품에 담긴 이야기와 삶을 그려나가는 대화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위안을 받고 오기도 한다.

또, 작가의 작업실에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생각지도 못한 좋은 작품을 만날 때도 있다.

먼지 쌓인 작업실에서 선별된 작품들을 전시장에 걸어두고 조명을 비추는 그 순간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벅차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그 비밀스러운 작업실에서 꿈을 그려나가고 있을까?

어디선가 묵묵히 그려지고 있는 좋은 그림들을 상상하면서, 그 꿈을 만나러 가는 즐거운 생각에 오늘도 마음이 설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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