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아닌 시민들이 직접 뛰어들어 범인을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일은 경찰이 탄생하기 전에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경찰이 등장한 이후에도 비일비재했다. 미국에서는 이를 비질란티즘(vigilantism)이라고 부른다. 베트맨이나 스파이더맨·슈퍼맨 같은 슈퍼 히어로들의 활약도 결국 비질란티즘에 속한다.
미국에서는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가 등장하고 이들의 작업을 돕는 앱까지 생겼다. 페이팔과 팰란티어를 만든 실리콘벨리의 갑부 피터 틸이 투자한 ‘시티즌(citizen)’은 사설 경찰병력까지 만들려다가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성장과 국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만난 교집합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몇초 전 3층에서 비명이 울렸다. 윗집 남자가 흉기로 엄마의 목을 찌르는 것을 보고 딸이 외친 소리였다. 그 광경을 본 순경이 아래로 내달리다 선임자인 경위와 조우했다. 두 경찰관이 빌라 2층 계단에서 마주친 것이다.
경위 옆에 있던 피해 여성의 남편은 ‘빨리 올라가자’고 재촉했다. 하지만 두 경찰관은 빌라 밖으로 사라졌다. 당시 경위에겐 권총이, 순경에겐 테이저건이 있었다. 남편은 혼자 3층에 올라갔다. 집 앞 복도에 부인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딸은 그 좁은 곳에서 흉기 공격을 받고 있었다. 남편은 칼을 든 남자를 맨손으로 제압하다 여러 곳 찔렸다.
지난 15일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사건’은 눈앞에서 112신고자가 흉기에 찔리는 것을 보고도 경찰관이 등을 돌린 사건이다. 경찰관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시민을 구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기대가 무너진 것이다. ‘구조 요청을 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이번 사건으로 비난 여론이 일자 “우리도 직장인”이라며 나선 경찰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이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으로 그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경찰은 모두가 뒷걸음질 칠 때 직업의식과 희생정신으로 의연하게 위험에 맞서는 직업인이다. 또한 수뇌부가 정권에 목매지 않고 국민생명 보호에 헌신하는 경찰상을 보여왔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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