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산 자체 높이 받들어 숭배하는 일 ‘시산제’
한 해의 무사산행·건강·국태민안 등 기원
세 번의 절로 산사람·고인·산신에게 축원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일정한 통제 속에서 보편적 삶을 꽃 피우기 위해 분망한 사람들이 살던 서라벌은 천년을 이어온 고대 도시로서 세계사에 드문 사례이다. 토함산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동해를 펼쳐 놓고, 안쪽으로는 영일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형산강 상류 언저리를 시작으로 평야를 이루는 너른 땅에는 백성들의 취락 근거지가 형성됐고 지금도 지리적으로 특별히 변화 없는 ‘큰 고을’이 현재 ‘경주’이다. 

우리 민족 산악숭배 사상은 지역마다 지리 공간적으로 중심을 이루는 주요한 산을 진산(鎭山)이라 정하고 삶의 안위를 보장해 주는 진산의 상징성을 부각시켜 고대부터 민간신앙의 뿌리가 된다. 이는 한국적 산악문화이며 고전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을 비롯한 주요 관찬지리지나 지방읍지 문헌에, 난리를 진압하고 나라를 지켜내는 군사요충지를 주산으로 제사하던 ‘큰 산’을 ‘진산’이라고 정하고 지리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신라에서는 중요한 산 네군데 골라 ‘진(鎭)’이라 부르고 제사를 지냈다. 

왕의 기운이 서려있는 토함산은 신라 오악(五岳)(동악:토함산, 서악:계룡산, 남악:지리산, 북악:태백산, 중악:팔공산) 중에 동악(東岳)이라 했으며 석탈해설화에 의해 금, 은, 진주 등 일곱가지 보물이 묻혀있다고 해 칠보산(七寶山)이라고도 했다. 토함산 고스락 인근에는 삼국유사에도 기록이 있는 신라 제4대 이사금 석탈해 사당 유적지가 있다. 이는 국내 유일하게 왕의 유적지가 산꼭대기에 있어 신성한 기운이 있다고 여겨 제천의례에 성지로 이어져 온 것으로, 오늘날 지역민의 안녕과 평화를 도모하는 민간신앙 축원지로 잡게 됐다.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를 보면, 통일신라 제49대 헌강왕이 오악신(五岳神)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어 전국 이름난 명산이 산신신앙의 근거임을 알 수 있다. 산꼭대기에 왕의 사당지가 있는 토함산은 앞뒤에 두고 있는 산이 없이 홀로 씩씩하고 웅장하며 위엄 있고 수려해, 그 기상을 받아 공덕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수련장이며 서쪽으로는 불국사 동쪽으로 석굴암을 품고 있어 불교성지라고도 일컫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문무왕의 꿈에 석탈해가 나타나 “내 무덤을 파서 내 뼈와 진흙을 섞어서 소상을 만들고 토함산에 모시라!”고 현몽하니 왕은 석탈해를 동악의 산신령으로 모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산신령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산신탱화를 보면 산신이 호랑이 등위에 앉아 있는 근엄한 백발노인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선녀나 동자를 데리고 다닌다. 또한 산 중의 왕으로 불리는 호랑이를 의인화해 산신령으로 모시기도 한다. 산신에게 제사하는 일을 산신제 또는 산제라 하며, 산신제 기원은 매우 오래됐다. 특히 토함산 산신령은 왕이 죽어 호법신중이 됐다. 

산악인들은 산에 들 때 들머리에서 그 날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산의 주인인 산신령께 축원을 하는 시산제를 지내는데 이는 산신제에 기원을 두고 있음으로 제물 준비나 진행과정이 산제 형식에 준하고 있다. 시산제는 산 자체를 인격화해 위엄에 두려움을 가지며 높이 받들어 숭배하는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산에 있다고 믿어지는 신령, 즉 산신에 대한 경외감과 산을 어머니로 여기는 모태신앙의 발로로 전국에 유수한 산악회는 정초에 즈음해 통상 연중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회원들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소원하는 축원을 한다. 

영국의 유명 등산가 조지 휜치는 “등산은 스포츠가 아닌 삶의 방법이다”라고 했다. 산행은 기술과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산악의 정신과 자세로 누구든 산 들머리에서 ‘산악인의 선서’를 상기하자.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 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 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와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노산 이은상) 시산제에서는 절은 딱히 규정은 없지만, 첫번째 절은 살아 있는 산사람들에게, 두번째 절은 먼저 간 산사람들에게, 세번째 절은 산신에게 지내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병근 시인·문화평론가)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