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경
울산문인협회·수필가

서툰 손길 실수투성 초보 부모 시절 지나
사랑 가득 온전한 어른 성장한 아이 보며

아낌없이 받았던 ‘내리사랑’ 발견의 순간

 

  봄꽃들만큼이나 바쁜 시기에 접어들었다. 연둣빛 잎들은 초록으로 짙어지는 계절.
 어버이날을 비롯해 각종 집안 기념일들이 줄줄 엮어 달력에 동그라미로 표시한다. 어버이날을 맞아 집에 온 아들이 큰 선물을 안겨줬다. 내년에 결혼을 생각한다고 한다. 바쁜 시간 자기 성장을 위해 공부만 하는 줄 알았는데, 처음엔 무슨 그런 말을 하냐며 믿지 못했다. 예방접종 같은 약간의 언질이라도 줬더라면 놀라지 않았을 텐데.
 '자식을 겉 낳지 속은 못 낳는다'는 속담을 실감하게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얼마나 서툴고 부족한 부모였는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성장해서 새 가정을 꾸민다는 아들의 말에 감사할 따름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출산하고 서툰 손길로 어린애를 돌보다 보니 실수 투성이었다. 낮밤이 바뀐 아들을 돌보다 새벽에서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잠이 어찌나 쏟아지던지 아기가 깨서 울면 잠결에 젖을 먹이려고 팔을 끌어당겨 젖을 물리다 팔이 빠져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럴 때도 나는 너무 놀라서 친정 부모님부터 찾았다. 병원이 가까이 있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당황스러울 때마다 엄마를 찾는 애기엄마였다. 가정을 꾸렸지만 탯줄을 끊지 못한 것처럼 부모님 주위를 맴돌았던 시간들이 많았다. 서툴고 부족한 사람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함께 성장해 온전한 어른이 돼가는 것 같았다. 아이가 사랑이 가득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과외선생님과의 약속으로 겨울밤에 30여분을 길에서 기다리다 꽁꽁 얼어서 집에 와 책가방 한 번 내동댕이친 것이 애먹인 기억의 전부였다. 그렇게 사춘기는 알게 모르게 지나갔다. 이런저런 불안한 맘도 기우였음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남편은 주말마다 거실에 신문을 깔고 아이들을 불러 앉혀놓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었다. 아이가 남편 등 뒤에서 껴안고 앉았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었다. 손톱 하나를 깎으면서도 대화는 많았다. 손톱 밑에 까만 때가 끼어 있으면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재미있었는지 다 깎을 때까지 이야기꽃은 이어졌다. 간혹 아이가 무슨 일 있었는지 손톱을 물어뜯어 놓는 일도 있었다. 가끔은 자기가 깎는다고 서툴게 깎으면 남편은 조용히 다듬어주었다. 커가면서 자신들이 스스로 깎는다고 손사래 쳐도 남편은 대학 갈 때까지 꾸역꾸역 그 일을 계속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성장하고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못해도 서로의 맘을 나누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손발톱을 가끔 깎아드리는 일로 불효한 마음의 위안을 삼고, 코로나로 멈췄던 어머니 모시고 목욕탕 가는 일도 이젠 다시 시작해볼 생각이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바다가 보이는 정자 해수탕으로 목욕을 모시고 다녔다. 나 때문에 혼자 하는 일이 없어진다고 어머니는 혼자 가겠노라고 우겨대시지만 기어코 동행해서 등도 밀어드리고 우유 한 잔 사드리며 내 불효에 작은 위안을 삼으니 행복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어서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셨다. 빠듯한 시골 살림에 수확한 작물을 장에 팔아 돈으로 만들어야 했지만,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먼저 먹였다. 가을 추수하면 햅쌀밥은 으레 자식 먼저 한 술 먹이고 나서야 내다 파셨다. 그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자식을 키우고 보니 아버지가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지금 좀 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몹시 보고 싶다. 껄껄 웃으시는 아버지 모습이 아카시 향처럼 흩어진다. 
 불원간 친정아버지 산소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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