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공동주택관리 준칙’ 개정 불구
괜히 신고했다 괘씸좨로 해고 우려
2년간 갑질 사례 접수 건수 ‘전무’

울산시가 '경비원 괴롭힘 금지'를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동주택 관리 규약 준칙을 개정한 지 2년째로 접어들었지만 신고 건수는 물론 점검 건수조차 전무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당초 우려된 실효성 문제가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다.

경비원에 대한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이 사라졌다기 보단, 신고했다가 '괘씸죄'에 걸리면 해고될 수 있다는 절박함에 문제를 덮어버리는 사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8일 취재진이 중·남·북구 지역 공동주택 경비원 7명과 인터뷰한 결과 이들 모두 최근 1년 사이 폭언·욕설, 부당업무 지시 등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남구의 다세대 아파트에서 6년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박성도(69)씨는 "또 지정주차석에 다른 집 차가 세워져 있다면서 대신 빼라고 시키는 황당한 경우도 여러 차례 겪었다"며 "또 주민들이 쓰레기를 가져오면 같이 치우는 편인데, 젊은 사람이 다짜고짜 '왜 돕냐'고 화를 내더니 다른 사람 것도 돕지 못하게 방해하더라"고 토로했다.

인근의 또 다른 아파트 경비원 윤모(72)씨는 "불과 5개월 전에도 한 남성이 술에 취한 채 새벽 2~3시에 불러내더니 대신 주차해달라고 생떼를 쓰더라"며 "안 된다고 말했더니 막 고함을 지르면서 팔을 휘젓는 등 위협을 가했고 덩치도 있는 사람이라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주차해줬다"고 했다.

북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 경비실 직원은 작년 "입주민으로부터 분풀이 폭행을 당했다"며 본지에 해당 동영상과 함께 제보했지만, "해고될까 걱정된다"며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앞서 울산시는 작년 2월 '울산광역시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이하 준칙)을 개정하면서 경비원 갑질 사례 신고 조항을 만들어 각 구·군에 배포했다.

하지만 1년 동안 5개 구군서 집계된 경비원 갑질 신고는 0건이다. 현장 경비원들은 재계약 체결에 불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점, 1차적인 갑질 신고 주체가 관리업소와 입주자대표회의임을 지적하고 있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제4조 제1항의 4)에서는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고령자를 기간제 근로자로 고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일정 기간 이상의 계약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은 명시되지 않아 경비원의 경우 1개월 단위의 '초단기계약'도 가능한 처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2019년 11월 발간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비노동자의 6개월 미만의 초단기계약률은 무려 30%가 넘었다. 1년 미만의 근로자에게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게 현행법이다보니 재계약에 실패할 경우 경비원들은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경비원들은 재계약을 체결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입주민들의 업무 외 지시에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더욱이 울산시가 개정한 준칙에도 '구멍'이 있어 경비원들이 신고를 꺼리는 이유로 작용된다. 특히 경비원들은 '괴롭힘 사실을 관계기관에 최종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면서도 '관리주체나 입주자대표회의 등을 거치도록' 규정한 조항을 악법으로 꼽는다.

준칙 13조의 3(괴롭힘 발생시 조치)에는 △갑질이 발생한 경우 누구든지 그 사실을 '관리주체나 입주자대표회의에 신고'할 수 있고 △관리주체나 입주자대표회의는 괴롭힘 사실을 확인해 갈등을 해결하려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관계기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를 두고 경비원을 괴롭힌 입주자의 권익단체인 입주자대표회의에 1차적으로 신고를 하도록 한 것이 과연 실효성이 담보된 게 맞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한 경비원은 "경비원 대다수가 60대에 정년퇴직하고 벌어먹고 살겠다고 들어온 사람들인 데다, 재계약도 길어봤자 2년이라 입주민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며 "1차적으로 관리업체랑 입주자대표회의에 신고하면 익명성 보장이 되겠나. 이 바닥에서 찍히면 어디 갈 데도 없는데,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에 대해 울산시 관계자는 "준칙은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일 뿐, 현장 대응은 각 자치구에 일임하고 있어 정확한 현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수 있지만 상위법 개정에 맞춰 준칙도 바꿀 계획이라 당장 뭘 바꾸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윤병집 기자 sini20000kr@naver.com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