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을 치른 1950년 이후의 한국사회엔 병역기피가 만연했다. 준법의식이 낮았던데다, 배고픔과 구타를 견뎌야 했던 불합리한 병영생활이 빚어낸 결과였다. 군 면제를 받으려고 특권층은 ‘빽’을 썼고 약삭 빠른 이기주의자들은 온갖 수법을 동원했다.

 멀쩡한 손가락을 자르기도 했고, 항문에 양잿물을 발라 치질을 가장하는가 하면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위장한 사람도 있었다. 뇌물을 써서 호적을 고쳐 나이를 징집 연령보다 높게 위조하는 일이 유행하자 언론엔 ‘연령 인상자(引上者)’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심지어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1년이 넘도록 여장(女裝)을 한 채 식모살이를 한 청년이 검거되기도 했다. 병역 기피자들 상당수는 당국의 추적을 피해 이리저리 전국을옮겨 다니며 살기도 했다. 1954년 2월 한달간 내무부 치안국에 자진 신고한 병역 기피자는 5만5,028명이나 됐다. 1956년 3월에도 당국이 추산한 전국의 기피자는 약 10만명이었다.

 1957년에는 종교적 이유로 총을 들지 않겠다는 병역 거부자가 처음 등장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병역 거부 사건 재판에서 서울지법은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교리를 내세운 건 더욱 가증(可憎)하다"며 금고 1년을 선고했다. 구형량 2배의 징역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병역을 기피한 본인과 그 부모가 이 사회에서 얼굴을 들고 살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숱한 곡절 끝에 이제 우리사회에서 병역 의무를 피해 도망갈 구멍은 거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의 동원령에 러시아가 대혼란에 빠졌다. "푸틴을 위해 죽을 순 없다"며 전국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자해를 해서라도 군 입대를 기피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를 빠져나가려는 탈출 행렬이 이어지면서 국경지역의 교통이 마비됐다. 구글 트렌드에는 ‘집에서 팔 부러뜨리는 법’ 등의 검색어가 상위에 올랐다.

 이 와중에 ‘푸틴의 입’으로 불리는 크렘린궁 대변인 아들이 동원령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나돈다. 우크라이나는 침략 도발에 나서 수세에 몰린 ‘푸틴 부러뜨리는 법’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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