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 내경의료재단 제일병원 이사장·본지 독자권익위원회 위원장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자연의 섭리다. 그중에서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는 것의 상대적 개념이고, 늙음은 젊음의 대칭 개념이며, 질병의 고통은 건강의 쇠약으로부터 형성된 징후다. 노인이란 인생의 이러한 라이프 사이클에서 왕성기를 지나 쇠퇴기 또는 황혼기에 접어든 연령 계층을 말한다. 노인은 사고가 있는데 빈곤, 건강의 악화, 역할의 상실, 그리고 소외와 고독이다. 

 첫째, 노인은 빈곤하다. 2020년 66세 이상 은퇴 연령층의 소득분배지표는 상대적 빈곤율 40.4%, 지니계수 0.376, 소득 5분위 배율 6.62배로 2016년 이후 모든 지표에서 소득분배 정도가 개선되고 있으나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은퇴 연령층(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둘째, 노인은 건강의 악화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는 노인이 질병에 신음한다 해도 빈곤으로 제때 양질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노부부만의 세대는 질병에 걸렸을 때 어려움이 있다. 셋째, 역할의 상실이다. 노인들은 가족 내에서 몰이해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다. 넷째, 소외와 고독감이다. 노인의 소외, 고독감은 가족부양의 직·간접적 영향 하에 있다. 부양은 물질적 부양, 심리적 부양, 신체적 부양이 있으나 특히 심리적 부양 문제가 가장 큰 작용을 한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효과적인 국가 발전 전략을 작동해 왔다. 정부 주도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이 과정에서 복지는 따로 생각할 틈이 없었다. 엄청나게 빠른 경제성장으로 복지 욕구가 채워졌다. 그 결과 한국적 현상인 ‘지체된 복지국가’가 잉태됐다. 노인복지 문제를 거론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는 ‘세상에 공짜 복지는 없다’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복지 발전의 수준에 맞는 세금, 보험료, 이용료의 납부를 통해서 부담과 복지의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유럽과 유럽대륙의 고부담 고복지 전략,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중부담 중복지전략, 동남아시아 국가의 저부담 저복지 전략은 이러한 원칙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그리스나 아르헨티나처럼 저부담 고복지를 추구하는 것은 복지 포퓰리즘이다. 이는 국채 발행을 통해서 이뤄다. 현 세대는 잔치를 벌이고 후세대에 빚더미를 물려주는 불공정복지는 미래가 불안하다. 이제부터라도 중부담 중복지 전략이 필요하다. 복지국가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개인의 일상적 사회보장과 위험을 해결하고 복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복지를 최우선 정책목표로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는 노인들은 역사의 가늠자이자 시대의 파수꾼 같은 역할을 해왔다. 후기 노인(75세 이상)의 경우 일제 강점기에 출생해 해방, 건국, 그리고 전쟁을 경험한 세대이다. 전기 노인(75세 미만)들도 어려운 시기에 불행한 성장 과정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감 속에서 정글 숲을 헤치고 나온 사람들이다. 노인이 흘린 땀은 조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흘린 값진 땀이었고, 노인이 흘린 눈물은 자녀에게 모든 것을 투자했지만, 사회와 자녀로부터 외면받아 흘리는 눈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의 세대 간의 갈등은 ‘힘없는 노인’과 ‘불만에 찬 젊은이’ 간의 문제로 귀착되고 있다. 이러한 세대 간 갈등 문제는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가 현실화된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는 이러한 노인과 젊은이들 간의 세대 간 갈등을 하모니 시키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노인들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주인공이다. 그들의 삶을 조명해 본다면 가히 ‘독립군’에 비견할 정도로 힘든 과정을 겪었다. 그렇기에 현재의 노인들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투영시킬 수 있는 역량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김종길 내경의료재단 제일병원 이사장·본지 독자권익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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