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논설실장
김진영 논설실장

  여론조사 20%를 넘기자 조국의 입이 거칠어졌다. 뛰어들까 말까 망설이던 총선 출발선에 처음 선 순간, 그는 이런 꿈을 꾸었을지 모른다. 봄날이 지나기 전 대법의 확정판결이 나도 다음 정권을 이재명이 잡으면 즉각적인 사면으로 정치적 복권이 가능하리라. 그런데 그 꿈이 점차 부풀어 오르고 있다. 조국혁신당이 어떤 여론조사는 25%를 넘겼다. 여기서부터 부산 사투리가 튀어나오며 용산을 향해 삿대질이 시작됐다. 이제 사면의 꿈은 잠시 접어도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200석의 꿈이 탄핵의 깃발을 흔드는 망상으로 엉덩이가 들썩인다. 어쩌면 그런날이 오고 그 시점이면 눈알을 굴리는 대한민국 사법부는 대법의 파기 환송으로 응답하리라는 망상까지 꼬리를 문다.

 이런 그림은 망상이 아닌 듯 하다. 실제로 조국은 자신의 이름과 비스무리한 조국혁신당 선대위 출범 직후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은 좌파나 우파가 아닌 ‘대파’ 때문에 망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부인은 주가조작을 하더니 대통령은 대파 조작을 하는 것이냐"며 "김건희 주가 조작, 윤석열 대파 조작, 한동훈 비번 조작"에 이어 "검찰독재 9속도로" 라는 게시물을 올리며 신바람을 냈다. 그런 그가 이제는 "3년은 너무 길다"는 간결한 구호로 용산을 겨냥하고 있다. 3년이 너무 길다는 건 결국 끌어내리겠다는 상징의 다른 표현이다. 

 연일 재판과 유세를 오가는 이재명의 상황을 보자. 이재명 대표는 이번주 재판에도 슬쩍 무시하는 전략을 펴다 법원의 호통을 들었다. 대장동·성남FC·백현동 관련 배임·뇌물 등 혐의 재판이다. 툭하면 불출석을 외치다 억지로 가는 듯 언론에 대고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는) 검찰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제가 없더라도 재판 진행은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형사재판에 피고는 출석이 당연한데도 딴지를 거는 저의는 하나다. 검찰독재를 부각해 스스로 억압과 박해를 당한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다. 그러면서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차안에서 "이게 다 검찰이 노리는 것"이라며 "대선에서 진 죗값 아니겠냐"는 이상한 비약으로 문장을 마무리했다. 자신의 사법적 단죄가 대선패배의 죗값이라는 황당한 논리다.

 사실 이재명의 재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일일이 찾아보고 확인하는 것 조차 복잡할 정도로 사법절차가 얽혀 있는 이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그는 야당 대표라는 우월적 지위로 사법절차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일반인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 국회 제1당의 대표를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현실적 상황을 충분히 활용한 고도의 정치행위다. 이쯤되면 이재명 대표가 이번 총선을 앞두고 단식과 비명학살을 단행한 이유가 뚜렷해진다. 민주당과 이해관계 정당들이 더불어 200석을 넘기고 이미 학습한 탄핵의 희열을 다시 맛보려는 희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재판부를 잘못 만난듯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김동현 부장판사는 이재명 측의 불출석 목소리에 대해 "절차는 제가 정해서 진행하고 있다. 정치일정을 이유로 재판을 지연하는 것은 특혜"라고 일축했다. 김 재판장은 지난 재판에서 이재명 대표가 재판에 나오지 않자 "다음 기일에도 피고인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부터 강제소환을 반드시 검토하겠다"고 경고했고, 이 대표에게 피고인 소환장을 발송하기도 했다.

 제대로 걸린 이재명 대표가 그래도 판사가 아닌 검찰만 공격하는 이유는 뻔하다. 검찰독재 한놈만 패는 게 자신의 미래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잠시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보자. 서울 언저리를 두리번거리던 이재명이 민주당의 주류가 된 것도 한놈만 팬 일타공격법이 주효했다. 그 시절 이재명의 공격포인트는 탄핵이었다. 아무도 쉽게 꺼내지 못한 박근혜 탄핵이라는 단어를  입밖으로 꺼내면서 이재명의 지지율이 널뛰기를 했다. 그 장면을 오래도록 학습한 또 하나의 이재명이 새롭게 등장했다. 바로 조국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정당을 만든 조국은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로 청와대에 입성한 문재인의 남자다. 문재인의 간택으로  청와대를 활보한 그는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의 꽃길을 걸었다. 오른손에 적폐청산, 왼손에 검찰개혁의 깃발을 흔들며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는 어처구니 없게도 자신의 과거에 발목이 잡혀 광화문에 첫눈이 내릴 즈음 휘청 미끄럼을 탔다.

 그런 류의 정치부류가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말도 되지 않는 법치조롱이 벌어지고 있지만 어쩌면 이런 흐름에 불을 붙인 쪽은 용산이다. 40%의 지지율을 회복했다며 파안대소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용산의 믿음은 무엇일까.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2심까지 유죄판결로 만신창이가 된 범죄 혐의자들이 정당을 만드는 일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 만든 믿음이지만 그 믿음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한동훈 효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승기를 잡았지만 별의 순간은 찰나였다. 한번 더 뜀박질이 필요한 시간, 아차 용산의 덜컥수가 나왔다. 돌아선 중도층 민심을 돌리는 것은 왜 다시 보수를 지지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스스로 지지해야 한다는 믿음이 생겨야 지난 겨울 장롱 깊숙이 넣어둔 빨간 마후라를 끄집어 목에 감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중도층은 장롱문을 잠시 열려고 하다 다시 닫아버렸다. 

   지지율이 조금만 오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뼈가 뻗뻗해지는 대한민국 보수는 자충수에 능하다. 이종섭 사태가 대표적이다. 황상무야 워낙 그런 류의 사오정 인물이 속출하다보니 또나왔네 정도로 넘어가지만 이종섭 문제는 다르다. 추이를 보면 안다. 이종섭 사태로 시끌했던 10여일 동안 수도권 표심은 도루묵이 됐다. 민감한 시기에 왜 야당의 사냥감을 던져 놓았는지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탄식이 이어진다.  보수의 골든타임은 지금부터다. 보수가 궤멸한 것인가, 아니면 식물정부로 남아 탄핵의 북소리에 귀를 틀어막을 것인가. 선택의 순간이다. 아직 12척의 배는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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