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기행

한 사내가 일구어 놓은 땅 
억센 풀들이 마른다. 
어둠속에서 깊이 뿌리내린 잎들의 아픔 
그 사내의 一代와 만나기 위하여 
우리는 계속 지껄이며 밭으로 걸어 나갔다.
필경 흙속에 배여 들 무모한 우리들의 헤맴 
헤맴 속 우리가 경멸하며 버렸던 수많은 발자욱 
그리고는 또 아무 생각 없이 나는 걷는다. 
빗발처럼 수런대며 일어서는 단호한 것들의 音聲 
저 혼자 부대끼며 돌아가는 풀잎과 同行하며 
나는 언제나 허약한 사내 
조그만 事實에도 크게 놀란다.

 <오승강의 ‘사림기행’ 中>

● 글씨는 그 사람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했던가. 오승강 시인의 육필을 보고 있으면 참 반듯한 사람일 것이란 짐작이 간다. 여기 소개하는 시 ‘사림기행’은 우선 제목부터 수상쩍다. ‘사림’은 어떤 지명이 아닌 언어, 혹은 서적의 탐독 쯤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 의미심장한 시를 찬찬히 음미해 보면 한 시대를 고뇌하며 방황하는 시인의 내면세계를 들어다 볼 수 있다. 등단 이후 오시인은 삶의 진실에 가닿는 작품들로 일관한다. 오승강 시인은 그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는 신음하는 농촌의 현실을 가식 없이 노래하며, 누구보다 정감 어리는 한국적 시어들로 서정의 밑바닥까지 가닿아 있는 참시인임에 분명하다.
●경북 영양 출신인 오승강시인은 안동교육대학교 졸업 후 1976년에 『사림기행』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가작에 당선됐다. 가작 입상. 시집 「새로 돋는 풀잎들을 보며」, 「피라미의 꿈」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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