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먹이고 토양을 기름지게하는 닭은 신(神)이 내린 선물이다. 올 겨울에 새롭게 유입된 H5N6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고 있다. 20일만에 전국에서 338만마리가 살처분됐다. 경북과 경남을 제외한 전국에 확진판정이 내려졌다. 텃밭에서 닭을 키우는 사람들은 요즘 아침저녁으로 닭의 얼굴 살피기에 바쁘다. 동네 사람들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이처럼 신경과민이 된데는 이유가 있다. 야생 철새가 유력한 매개체라는 소문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철새들은 물이 있는 곳으로 옮겨다니는데 집 지붕 위를 통과한다. 만약 철새의 똥이라도 닭장 부근에 떨어지면 어떡하나. 농장 간 전파도 무시할 수 없다.

AI 바이러스는 유구한 세월동안 조류를 감염시켜 왔다. 그러면서 숙주에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자손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는 도구로만 교묘한 진화형태를 보여왔다. 그러던 중 1996년 중국 광동(廣東)에서 H5N1이라는 새로운 AI 바이러스가 출연했다. 

이듬해 이 바이러스가 변이돼 홍콩에서 가금류는 물론 18명의 사람을 감염시켜 6명이 숨져 세계를 경악시켰다. 근래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고병원성 AI의 근원은 이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이 바이러스가 점점 전파·확산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는 수없이 많은 변이종이 생겨났고, 지금도 계속 변이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종류의 변이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지금과 같은 변이속도라면 여러 종류의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겨울 철새를 통해 동시에 유입될 가능성도 시간 문제일 뿐이다.

시·군에서는 보상을 전제로 살처분을 권한다. 이제 바이러스가 토착화돼 살처분은 매년 겨울 연례행사로 바뀌어 버렸다. 천문학적 숫자를 매년 생매장하는건 계획적인 방역이 아니라 무계획적 살생이다. 끔찍한 매장 대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매년 쓰는 수천억원의 보상금을 기반으로 휴업보상제를 실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겨울철 사육 중지 농가에 보상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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