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미취재1팀

월급 240만원을 받아 아픈 딸을 비롯해 3명의 자녀를 키우며 생활고에 허덕이는 30대 기러기 아버지가 아이의 분유와 기저귀 등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난치병에 걸린 딸의 병원비를 마련하려 중고차에서 쪽잠을 자면서 돈을 아꼈다는 그의 사정은 ‘동정론’을 일으켰다.

경찰서 형사과에는 그를 후원하고 싶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당사자는 극구 사양했지만 “대신 좀 전해달라”며 담당 형사의 계좌번호를 물을 정도였다.

사건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먼저 그가 훔친 물건이 생필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13차례의 범행 중 분유와 기저귀를 훔친 것은 3차례에 불과했다. 100만원 상당의 해외 브랜드 선풍기, 고가의 DSLR 카메라,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점퍼….

월금 240만원으로 다섯식구가 먹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엄연한 맞벌이 부부였고, 생활비가 빠듯해도 벼랑 끝에 내몰릴 정도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성장기의 아이를 지켜보자며 병원에서도 수술을 미룬 탓에 주기적으로 병원비가 드는 것도, 수술비가 급한 것도 아니었다.

숙박업소에서 지냈던 그가 중고차를 구입해 쪽잠을 자기 시작한 시점에 범행을 시작한 점도 의문을 품게 한다.

물론 구멍이 숭숭 뚫린 사회안전망을 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이들 모두가 남의 물건을 훔치지는 않는다. 그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불쌍한 가장처럼 비춰지는 게 불편한 이유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그가 아니라, 아픔을 극복하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건강하게 살아갈 그의 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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