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과 주변, 도시와 시골 등 ‘이분법’
한쪽이 더 낫다고 판단하게끔 만들어
자아와 타자 ‘역지사지’의 성찰 필요

 

최진숙 UNIST 기초과정부 교수

이 칼럼의 제목은 최근 수도권의 지인으로부터 받은 우편물에 쓰여 있던 주소 첫 부분이다. 물론 우편물은 내 주소지에 잘 도착했다. 경상북도 어딘가에 가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 지인은 현재 ‘경기도 일산시’에 살고 있다. 아마도 울산시가 ‘광역시’라는 것을 몰랐거나, ‘경기도 ○○시’라는 지명에 익숙한 나머지 무심코 그렇게 적었을 수도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인생의 반 이상을 서울에서 보낸 후 외국의 소도시에서 살다가, 이제 소위 ‘지방’도시에 8년째 살면서, 여기 살지 않았으면 절대 알지 못했을 것을 경험하고 있다. 제목에서 보이듯 서울 (혹은 수도권) 사람들이 지방에 대해 보여주는 무지함이나 무심함이다. 이러한 무지와 무심 때문인지 서울 사람들은 지방 도시가 마치 일일 생활권 내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할 때가 간혹 있다. 서울에 출장이 있어서 갈 때 마다 거의 매번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 ‘이것 때문에 오셨어요?’ 혹은 ‘오늘 오셨어요?’  울산이라는 먼 곳에서 왔으니, 분명히 이것 외에 다른 일도 보러 오거나, 어제 왔을 것이라는 가정을 반영하는 질문들이다. 아무리 KTX 등과 같은 첨단 대중교통이 발달하고, 인터넷 활용으로 전국 어디서나 거의 동일한 경험을 한다고 해도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서울(혹은 수도권)과 지방 도시 간의 심리적 거리가 존재한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지방 도시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자긍심 보다는 ‘서울 쫓아가기’만 하고 있을 뿐, 각 도시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서울이라는 ‘중앙’을 기준으로 하는 차별이 지방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것도 보인다. 
한번은 필자가 우연히 만난 울산 출신 사람과 인사하면서 언양에 산다고 했을 때, 다음과 같은 반응을 들었다. ‘거기는 좀 멀지 않나요?’ ‘거기서 계속 사실 거예요?’ 어느 곳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멀다’는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울산 시내에 사는 사람에게 언양은 살만한 곳이 아닌 ‘주변’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필자는 인류학자로서 과테말라의 한 시골 마을에서 박사 논문을 위한 현지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그 곳에서의 연구 결과 파악한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중앙’과 ‘주변’은 상대적 구분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 중 과테말라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그 곳에서도 심지어 대도시도 아니고 지방 소도시의 한 마을에서 현지조사를 했으니, 필자가 어디라고 말한들 누가 알 수 있으랴. 어쨌든 그 알지 못하는 한 마을에서도 ‘중앙’과 ‘주변’을 구분하고 있었다. 

필자가 체류하고 있던 곳은 모모스떼낭고라고 불리는 마을로서 주위의 작은 마을을 모두 포함해 인구가 10만 정도 되었다. 모모스떼낭고에서는 울산의 언양처럼 읍내에서 정기적으로 장이 열리는 데, 장날 마다 그 곳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멀리는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와야 하는 작은 시골 마을 사람들은 읍내를 ‘중앙’(el centro)이라고 불렀고, 소위 ‘중앙’에 사는 사람들은 이 작은 마을 사람들을 ‘멀리서 온 사람들’ 혹은 ‘촌에서 온 사람들’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흔히 자신이 살고 있는 중앙으로부터 멀다는 것은 ‘자신 보다 못한’ 곳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중앙과 주변, 도시와 시골 등과 같은 이분법은 우리가 자아와 타자를 위계적으로 구분하기 위한 한 방식이다. 자아와 타자를 구별하기는 과거와 현재, 한국과 과테말라, 서울과 지방 할 것 없이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와 같이 자아와 타자를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분법적 구분은 둘 중 한쪽이 더 낫다고 판단하게끔 하곤 한다. 
이러한 위계적 구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아를 ‘중앙’에 놓고 타자를 ‘주변’으로 보는 나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서는 ‘주변’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한번쯤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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