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영
시인·비평가

오월을 두고 흔히들 계절의 여왕이라 한다. 상투적으로 인용되는 이 말 속에는 오월이 화려한 때라고 하는 의미를 내장하고 있다. 오월의 화려함은 나무가 신록으로 물들고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는 등 자연의 변화를 염두에 둔 말이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2017년 오월,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적인 지형도 엄청난 변화로 물결치고 있다. 새로운 대통령의 출현으로 맞이한 변화는 공정, 정의로운 사회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말하는 사회이다. 겨울 광장에서 모인 촛불 민심이 오월에 와서 피어난 것이다. 이처럼 정치와 사회도 민심에 의해 변한다. 민심에 따라 권력은 변한다. 그러므로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영원할 수도 없다. 권력이 무상하다면 지도자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제대로 읽기, 즉 보편성을 찾을 수 있겠다. 문학이 그 중 하나가 되겠는데, 특히 오월을 사랑하고 노래한 금아 피천득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금아는 <오월>이라는 시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라고 했다. 오월의 모습이 맑고 감각적이며 새롭게 다가온다. 하얀 색과 비취색의 대비가 밝고도 깨끗하여 느낌이 새롭다. 새롭게 느낀다는 것은 새롭게 삶을 산다는 뜻이다. 이어 금아는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라고 노래한다. 오월의 신록은 풋풋하고 싱그럽다. 피어나는 생명력을 품어대는 신록과 나무와 꽃들. 우리가 오월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금아 피천득 선생의 글에 공감한다면, 그래서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고 나이를 세는 부질없는 짓은 하지 않으리라. 

해마다 오월은 오고 가지만 아무런 느낌도 생각도 없이 오고 간다면 삶이 덧없이 흘러간다는 증거다. 삶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면서 기억을 남긴다. 그러니까 삶은 기억하는 시간과 공간이다. 기억 속에 생각과 느낌이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황현산 교수는 <밤이 선생이다>에서 ‘기억을 저축하지 않는 삶은 그날 벌여 그날 먹고 사는 삶 보다 슬프다.’라고 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삶이 치매이며, 치매는 삶을 살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월 역시 시간이면서 공간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오월에 대한 기억(느낌 따위)을 쌓지 못하거나 오월을 보고 즐기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서 금아는 <창밖은 오월인데>라는 시에서 ‘컴퓨터에는 미소가 없다’라고 안타까워한다. 컴퓨터는 생각과 느낌이 없는, ‘0’과 ‘1’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기계적 세계이다. 그러나 금아의 오월은 ‘밝고 맑고 순결함’이 깃든 기억과 감성의 세계이다. 

금아 피천득 선생은 오월을 사랑하고 오월에 대한 글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그는 오월(25일)에 돌아갔다. 그를 두고 ‘5월의 영원한 소년’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윤동주 시가 나의 별에도 봄이 오기를 염원하며 부끄러워하는, 순결한 청년의 마음을 담아내었다면, 금아 피천득 선생은 오월로 대변되는, 밝고 순결한 소년의 마음을 간직한 글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인연>을 비롯한 금아의 글을 사랑하고 읽는 이유가 이런 순연한 정신에서 비롯된 그의 삶이 글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오월처럼 그의 글은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변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보편성을 간직하고 있다.

올해는 금아가 세상을 뜬지 10년으로 그의 문집을 새로 내고 추모식도 열렸다. 춘원 이광수에게 직접 사사받고 도산 안창호를 스승으로 모신 금아 피천득. 그의 기념관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 3층(롯데민속기념관)에 있다. 롯데그룹 건물 중에서 제일 문화적이고 소박하면서 멋있는 공간이다. 그것은 오월의 밝은 햇살처럼 미소 짓고 있는, 영원한 소년 피천득의 글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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