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에 대한 농림수산식품부의 전수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16일 경기도 양주 한 산란계 농장에 산란계들이 사육되고 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은 농장주인들이 닭 진드기를 제거하기 위해 맹독성의 살충제를 무분별하게 살포한 데서 비롯됐다.

문제는 이처럼 이상기온에 따른 닭 진드기 확산과 살충제 살포 등으로 산란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병원체에 감염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것처럼 올해도 여름철 진드기 발생과 살충제 살포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진 산란 닭들이 AI에 쉽게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지난해 살충제 살포, 사상 최악의 AI 피해

지난해 여름 35℃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이어졌다. 올해처럼 산란계 농장에는 닭 진드기가 극성을 부리며 산란 닭들을 괴롭혔다.

 


농장 주인들은 진드기 퇴치를 위해 맹독성 살충제를 살포했다(CBS노컷뉴스 2016년 8월17~19일 보도). 비좁은 철재우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료만 받아먹던 산란 닭들은 진드기와 살충제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털과 살이 빠지고 면역력은 갈수록 떨어져 갔다. 이처럼 힘겨운 여름이 지나고 이내 가을이 왔다. 중국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를 가지고 철새가 들어와 전국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끔찍한 재앙이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16일 전남 해남군 소재 산란계 농장(4만마리 사육)에서 AI 의심축이 신고됐다.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고병원성 H5N6형 바이러스는 무서운 속도로 전국에 퍼져 나갔고, 닭과 오리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올해 4월 3일까지 이어졌던 AI는 전국 50개 시․군에서 383건이 발생해, 가금류 3787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지금까지 없었던 사상 최악의 AI로 기록됐다.

특히, 산란 닭이 바이러스의 집중 공격 목표가 됐다. 전국에서 사육 중이던 산란 닭의 무려 36%인 2520만 마리가 사라졌다.

정부는 이처럼 산란 닭에 AI피해가 집중된 것은 신종 H5N6형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매우 강한데다 잠복기가 짧아 증상이 바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계란 수집차량들이 제대로 소독을 하지 않고 교차 운행한 데다, 농장들도 차단방역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은 AI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하는 책임회피용 떠넘기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충남대 서상희 교수는 지난해 12월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철새가 AI 바이러스를 외부에서 가져왔다고 하지만, 여름내 농장 주변에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도 많았다"며 "우리나라도 AI가 상시화, 토착화 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국내 가금류 농장들이 바이러스에 심각하게 오염돼 있었고, 닭들의 면역력도 떨어져 있었지만 정부와 농장주들이 방치하면서 AI 피해를 키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살충제 계란 파동, 산란 닭 면역력 결핍…올 겨울 AI 바이러스 비상
 

(노컷뉴스 자료사진)

그렇다면 올해 상황은 어떨까?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를 겪으면서 드러난 것처럼 병해충, 특히 진드기가 창궐했고 살충제 살포로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다. 

게다가 올해 초부터 계란파동이 나면서 계란을 1개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계란 수집 차량들이 전에는 3개 농장을 방문했다면 올해는 5개, 6개 농장을 방문하는 등 사람과 차량 통행이 오히려 더 늘어났다는 점에서는 오염 가능성이 더 커졌다. 

계란 수집상인인 김기종(65세)씨는 “정부가 AI 발생 농장에 대해 철저하게 감독한다고 하지만, 나머지 농장들은 엉망이다”며 “이번에 독한 살충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농장이 많이 오염돼서 진드기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산란 닭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면역력이 지난해 보다 더욱 나빠졌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김재국 원장(동물병원 수의사)은 “기온이 오르면 닭들은 굉장히 고통을 겪게 되는데 여기에 진드기가 괴롭히고 살충제까지 맞으면 스트레스는 엄청날 것”이라며 “이미 면역력은 상당 부분 떨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또, “사람도 그렇지만 동물도 면역력이 떨어지면 각종 질병에 쉽게 걸릴 수 있다”며 “특히, 일종의 감기와 같은 조류 바이러스에 닭들이 쉽게 감염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와 농장주들은 그동안 AI가 발생해도 가금류의 면역력 결핍 문제에 대해선 철저하게 무시했던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산란계 업계 관계자는 “올해 AI 때문에 병아리가 없다 보니 종계 농장에서 병아리를 공급할 때부터 병에 걸려 그냥 서있기만 해도 케이지(철재우리)에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런 닭들이 알을 낳아 시장에 파는 것도 문제지만 겨울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바로 죽는다고 봐야 한다”며 “면역력이 떨어진 닭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AI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산란계 농장을 중심으로 쉽게 확산될 수 있을 만큼 사육환경과 닭들의 건강상태가 취약하다는 의미다. 

동물복지농장을 운영하는 전재수(가명, 56세) 대표는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공장식 농장에서 고병원성으로 전이가 된다는 전문가들의 연구 논문을 본 적이 있다”며 “그만큼 공장식 밀집사육이 AI 확산의 주범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면역력이 떨어진 닭들이 AI에 쉽게 감염돼 이웃 농장에서 이웃 농장으로 전파되고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것 아니냐"며 "올해도 AI가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현수 농식품부 차관은 "살충제 살포로 인한 면역력 결핍과 AI 바이러스와의 연관성에 대해 깊이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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