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진도 5.4 규모의 지진이 경북 포항을 뒤흔들었다. 하필 문재인 정부가 “원전 정책은 축소하되,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은 계속한다”는 공론화위원회의 대정부 권고안을 수용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지진 공포가 또다시 엄습한 거다. 일단락되는듯하던 신고리5·6호기의 건설 백지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탈원전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제 막 재개된 신고리5·6호기의 건설 중단은 물론, 상업운전을 앞두고 막바지 공정에 들어간 신고리4호기의 가동중단 재검토를 당장 요구하고 나섰다. 포항 지진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에 대한 ‘자연의 경고’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모델이 된 독일의 윤리위원회는 과거 ‘원전 자체는 안전해도 지진·테러·사고의 위험에 대비할 원전 기술력은 없다’며 탈원전 사회적 합의를 이끌었다. ‘신고리5·6호기 건설 재개’ 권고안을 수용하며 한 발 물러나나싶던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가 이번 포항 지진을 계기로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지 주목된다.30년 전부터 탈원전이 논의돼 온 대만은 ‘2025년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공정률 98%에서 건설이 중단된 롱먼 원전의 영구폐쇄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원전 시기를 2032년에서 2022년으로 10년 앞당긴 독일은 지난 9월 하원 총선에서 역대 최저 지지율로 소연정 연합정부를 꾸리게 돼 ‘2022년 원전제로’의 속도조절에 대한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분위기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30년 전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을 결정했지만 비싼 전기요금을 부담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의 탈원전 논의는 현 정부 출범 이후 활발해졌다는 점에서 ‘속도’가 아닌 ‘방향’ 설정이 우선돼야 하는 대목이다.
 

대만 정부가 공정률 98%에서 건설을 중단한 롱먼 원전이 위치한 지역의 모습. 롱먼 원전 건설 이후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지역주민들이 생활에 타격을 받았고, 이후 원전 건설이 중단됐지만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없어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

◆대만 ‘2025년 원전제로’ 정책…‘잘 포장했다’ 인색한 평가

지난해 선거에서 정권탈환에 성공한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2025년 원전제로’를 선언했다.  

대만이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탈원전 국가로 등극한 건 공정률 98%에서 건설 중단이 결정된 제4호 롱먼(龍門) 원전의 존재감과 상징성이 많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탈원전을 둘러싼 대만 정치권의 갑론을박은 여전하고, 차이 정부도 진전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차이 총통은 선거 때 롱먼 원전의 ‘영구폐쇄’를 공약했지만, 정작 당선 이후 ‘2025년 원전제로’를 선언하면서 이 대목은 제외했다. 

이를 두고 야당인 국민당은 “차이 정부가 ‘2025년 원전 제로’라는 ‘신주’를 떠받들고 있다”면서 “에너지의 98%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섬나라인 대만은 화력이건, LNG이건, 재생에너지이건, 원전이건, 어느 것 하나 포기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반핵시민단체나 롱먼 지역주민들은 정부가 롱먼 원전 영구폐쇄 공약을 이행해주길 요구하고 있다. 반핵시민단체는 민진당과 함께 탈핵운동을 벌여온 동지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달라”는 차이 총통에 대해 “기존 원전 정책을 잘 ‘포장’했을 뿐, 새로운 반핵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다”는 쓴 평가를 내놨다.   
  

1978년 국민투표를 통해 완공 후 한 번도 가동되지 못한 채 영구폐쇄 결정된 오스트리아의 츠벤덴도르프 원전 내부. 지금은 전세계 원전 실무자들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원조 탈원전국’ 오스트리아…독일 절반이지만 전기요금 비싸 

전세계적인 ‘원조 탈원전’ 국가는 사실 오스트리아다. 오스트리아는 6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한 츠벤덴도르프 원전을, 단 한번도 가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구폐쇄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지기 무려 8년 전인 1978년, 국민투표를 거쳐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오스트리아도 시행착오 기간은 있었다. 가동반대 50.47% vs 가동찬성 49.53%.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갈등은 증폭됐고, 이후 수년간 원전폐쇄정책은 사실상 추진 동력을 잃는 듯하다가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 방향이 확정됐다.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원전을 포기하고 안전을 챙겼다. 대신 비싼 전기요금 부담을 지고 있다.

현재 오스트리아는 재생에너지 비율이 전체 전력의 70%를 넘고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비싸고, 이웃 독일에서 전기를 수입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현지 통역을 맡은 이재욱씨는 “에어컨을 틀지도 않았는데 한달 에너지비용이 118유로(한화 15만4,248원)이고, 원룸에서 혼자 사는 형은 68유로(한화 8만8,888원)를 냈다”고 전했다.  

오스트리아 민간전력회사로 ‘가동 전 영구폐쇄’된 츠벤덴도르프 원전의 소유사인 EVN의 홍보담당 스테판 자흐(Stefan Zach)씨는 “가정용 전기요금을 기준(세금포함)으로 오스트리아는 1kw/h당 17센트이고 독일은 36센트다. 오스트리아 국민은 소득의 1% 정도를 전기요금으로 내는데 비해 독일은 2%를 낸다”며 “독일만큼은 아니지만 오스트리아도 전기요금이 비싼 편인데, 그렇다고 국민들이 탈원전에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진도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일단락된 듯하던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 재검토 요구가 되살아나고 있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16일 울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고리4·5·6호기 가동·건설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독일 ‘2022년 원전제로’ 정책…소연정 체제 속 흔들릴 조짐

독일은 탈원전 시대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롤모델로 삼은 국가다. 실제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래 2032년을 시한으로 잡은 원전폐쇄 시기를 2022년으로 앞당기겠다고 선언했다. 30여년간의 탈원전 논의 끝에 정해진 방향인 만큼 독일에선 탈원전 ‘총론’에 대해선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다만 원전제로의 시기와 방법, 비용 등 각론에 대한 이견은 분분하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그 결정은 잘못됐다”고 단언하며 “탈원전 시한을 정할 때는 대체 에너지원이 충분히 마련돼야 하는데 시한이 너무 촉박하다”고 했다. 

지난 9월 끝난 하원 총선 결과도 ‘2022년 원전제로’ 정책 완성에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결과만 놓고 보면 탈원전 정책을 주도해 온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승리로 끝났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기사당(CDU·CSU) 연합이 총 709개 의석 중 246석을 확보하면서 4연임이 확정됐다. 하지만 지지율은 33.0%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설상가상 나치 정권이 패망한 이후 처음으로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2.6%의 지지율로 94석을 확보하며 제3당 지위로 발돋움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선거 기간 내내 메르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한다는 공약을 강조했다. 

독일환경운동연합(BUND) 에너지정책 부장인 토르벤 베커(Thorben Becker)씨는 “탈원전 방향에 문제를 제기하는 정당은 없겠지만, 각 당마다 성향이 다르다보니 우려가 되는 게 사실이고, 탈원전을 주창한 ‘독일을 위한 대안’이 제3당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신경쓰이는 부분”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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