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태백산맥」의 이적성 논란이 시끄러울 때 작가 조정래의 기민함에 있어 ‘역대급’이라는 발언이 회자됐다. 검찰 공안부는 1992년 민주화의 기운에 떠밀려「태백산맥」을  문제 삼지 않기로 하면서 단서를 달았다. 일반 독자가 교양으로 읽으면 상관 없지만, 학생이나 노동자가 읽으면 의법 조치 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한 조정래 작가의 발언은 이랬다. “안방에서 어머니가 읽으면 교양물이고, 건넌방에서 대학생 아들이 읽으면 이적 표현물이란 말인가?”

1987년 1월 15일 오전 7시 30분 대검찰청. 이홍규 대검공안 4과장의 “경찰들, 큰일 났어”라는 한마디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딥 스로트(익명의 제보자)였다.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는 공안검사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로 특종기사를 취재하게 됐다고 25년 후 밝혔다.

공안부라는 명칭은 1963년 12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 ‘공안부’가 생기면서 한국 현대사에 처음 등장한다. 대검에는 10년 뒤인 1973년에 설치됐다. 당시 노동법 관계 사건은 ‘특수부’ 소관이었지만, 이후 공안부는 대공(對共) 사건은 물론 노동·학원·선거·집회·시위 사건 등을 담당하며 검찰 내 핵심 부서로 자리 잡게 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공안정국·신공안정국을 주도하며 보수 정권 국정운영의 한 축을 맡아 왔다. 공안부와 ‘공안검사’가 특별수사부와 함께 검찰 조직의 양대축을 이뤄왔다. 엘리트 코스로 통한 공안 검사들에겐 정계 진출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공공의 안전’을 지킨다는 취지와 달리 새정부에선 정권 수호에 치중한다는 비판과 함께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공안통’ 검사들이 주요 보직에서 밀려나면서 조기에 옷을 벗는 일도 빈번해졌다.

검찰이 ‘공익부(公益部)’로 명칭변경을 추진, 55년 만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됐다. ‘간첩잡기’ 등 기존 ‘공안’ 업무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이미지 개선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명칭 변경보다 그간 ‘공안적 시각’에서 벌여온 사건 처리 등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들린다. 그 이름이 바뀐다고 선한 권력이 될 수 있을까. 비대한 권력은 타락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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