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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겨울의 어촌…희망 끈 놓지않는 강인한 어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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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한(李丁漢) 울산 현대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18.08.08 22:30
  • 댓글 0

감목관 홍세태가 남긴 조선 후기 울산의 생활·문화
13. 황폐한 마을 새들조차 굶주리고

홍세태의 초상.
해초 따는 소녀(1993년). 동구청 제공(사진으로 보는 동구 100년)


1) 황폐한 마을 새들조차 굶주리고

한 겨울 황폐한 마을 새들조차 굶주리고
찬바람 부는 고목엔 저녁연기 어려 있네.
짧은 치마 붉은 머리카락 늬 집 딸아인지
바위틈 물결 밟으며 김을 긁고 있다네.

 
歲暮荒村烏亦饑 天寒古木夕烟微
短裳赤髮誰家女 踏浪巖間採海衣


 
이정한(李丁漢)
울산 현대고등학교 교사
위의 시는 ‘가난한 어촌(海村)’으로 앞에서 소개한 시와 제목은 같다. 운자(韻字)는 미(微), 의(衣)이다. 새마저 굶주리는 황폐한 겨울 차디찬 바닷가에서 바위틈 물결을 밟으며 김을 긁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통하여 당시 어촌 마을의 어렵고 힘든 생활상을 노래하고 있다.
위의 시 1행에서 ‘한 겨울 황폐한 마을 새들조차 굶주리고’에서는 시간적으로는 주변 자연환경이 황폐하여 아무것도 없는 한 겨울이다. 그런데 이러한 날 새들조차 굶주렸다고 한다. 이러한 표현으로 보아 당시의 어민들은 농사를 지었으나 온갖 세금으로 모두 수탈당하였고, 벌판에는 작은 씨앗하나 남지 않아 새조차도 굶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이미 소개한 다른 시로 보았을 때 당시의 어촌 마을은 어느 계절이나 변함없이 황폐하였다. 하지만 위의 시는 추운 겨울날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당시 가난한 어민들의 생활 모습을 더욱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2행의 ‘찬바람 부는 고목엔 저녁연기 어려 있네.’에서는 황폐한 마을에 새조차도 굶주리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저녁연기가 어려 있음을 말하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저녁으로 한정하였다. 연기가 어려 있다는 것으로 보아 밥을 하기 위한 것인지 온돌방을 데우거나 소나 가축의 여물을 하기 위한 것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을 한 것은 굶주린 새들과는 다르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어촌사람들의 강한 생활력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3행의 ‘짧은 치마 붉은 머리카락 늬 집 딸아인지’에서는 한 겨울 바닷바람에 붉게 탈색된 머리의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아이가 등장하고 있다. 붉게 탈색된 머리의 짧은 치마’란 표현으로 보아 제주도에서 이주해 온 여성일 수도 있지만 바닷바람에 탈색된 머리와 어릴 때의 옷이라 이미 작아진 짧은 치마를 입은 가난한 어촌 마을의 소녀이다. 이 또래의 여자들은 한창 멋을 부리고 부끄러움이 많다. 하지만 그녀는 붉게 탈색된 머리의 짧은 치마를 입고 있다.  이 여자아이의 모습을 통하여 이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의 단면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마지막 4행의 ‘바위틈 물결 밟으며 김을 긁고 있다네.’에서는 3행의 붉게 탈색된 머리에 짧은 치마를 입은 어린 여자아이가 매서운 추위 속에서 바닷가 바위에서 김을 긁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시의 전반적인 상황으로 보아 이 어린 여자아이는 맨발일 것으로 추측된다. 찬바람 부는 저녁 무렵 연기는 이미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김을 긁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저녁거리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위의 시는 새조차 굶주리는 한 겨울 황폐한 어촌 마을의 모습을 한편의 풍경화를 보듯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그들의 힘들고 어려운 생활은 겨울바다의 바위 위의 찬 바닷물에 들어가 바위틈을 뒤지며 김을 긁고 있는 어린 여자를 통하여 매우 가혹한 상황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포수들이 숨어서 해달을 잡던 대왕암의 포수 돌.
해달(기산풍속도).
2) 해달들은 파도 타며 놀고

추운 들녘의 시든 잡초 끝도 없는데
아득한 바닷가로 저녁 해가 떨어지네.
뱁새들은 눈(雪)을 피해 숲으로 숨어들고
해달들은 파도 타며 놀고 있네.
월봉암 가는 길 가며가며 물으니
대답하는 어부는 모두들 근심 어렸네.
그래도 여기는 시 읊을 만한 형편이 되니
가마 세우고 곳곳에서 쉬어 쉬어간다네.

 
寒郊莽不極 落日下長洲
避雪林鹪伏 乘濤海獺遊
僧庵行且問 漁戶看皆愁
尙有詩家境 肩輿到處留

 
위의 시는 ‘바닷가의 길을 따라 월봉암 가는 길에서(遵海行向月峰庵途中)’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서 목장 마필의 안녕을 기원하던 사찰이었던 ‘월봉암’으로 가면서 지은 것이다. 계절적으로는 뱁새들은 눈(雪)을 피해 숲으로 숨어드는 겨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방어진에서 겨울 동안 눈을 볼 수 있는 날은 많아야 1주일이 되지 않았다. 어쩌다 눈이 내려도 다시 비로 바뀌거나 바로 녹아 버린다. 당시 목장의 산행장들은 눈이 오면 짐승의 발자국을 추적이 쉽기 때문에 산으로 호랑이 사냥을 갔다. 사냥은 남목의 동축사 뒤편의 동대산 방면으로 갔는데 당시 감목관은 직접 동참하기도 했으나 최소한 동축사까지는 동행하였다.

 그런데 위의 시에 의하면 그는 가마를 타고 곳곳에서 쉬면서 월봉암으로 행차를 하고 있다. 월봉암 가는 길은 남목의 관아에서 미포만을 따라 일산 번덕을 거쳐 갔을 것으로 판단된다. 목장리의 추운 들녘엔 시든 잡초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아득한 바닷가 노을 물든 바다에는 해달이 파도를 타며 놀고 있다고 한다.
한편, 국역 한국고전종합DB의 『추강선생문집(秋江先生文集)』 2권에도 해달이 나온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촌의 집들 나무껍질로 지붕 덮고
소금 굽는 장막에는 흰 연기 비꼈네.
 
푸르디푸른 빛은 동해의 바닷물이요
연분홍 고운 빛은 서안에 핀 꽃이라.
 
둘러선 바위에는 해달이 울고
저녁 길가에 모래 울음 울려 퍼지네.
산봉우리들 푸름이 다하지 않는데
만 겹의 산이 눈 가운데 지나가네.

 
         漁家木皮蓋 鹽幕白煙斜
         重碧東溟水 輕紅西岸花
         廻巖鳴海獺 暮路響鳴沙
         峰巒靑不盡 萬疊眼中過

위의 시는 추강 남효온(南孝溫)의 양양해변(襄陽海邊)이라는 시로 강원도 양양의 해변 경치를 노래하였다. 울산의 방어진과 다른 것은 어촌의 집들이 나무껍질로 지붕을 덮은 너와집이라는 것이다.

 해달(海獺)은 북태평양 북안과 동안에 서식하는 해양 포유류이다. 다 자란 해달의 몸무게는 14-45Kg으로 매우 두꺼운 털가죽이 있다. 주로 해안지역에 서식하며 먹이를 위해서는 해면으로 잠수한다. 주식은 성게, 연체동물, 갑각류, 제한적이지만 물고기 등이다. 이들의 식성과 먹는 방식은 여러 방면에서 특이하다. 우선, 도구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동물이라는 점인데 바위를 이용해 조개 등을 깨는 습성에서 볼 수 있다. 서식지에서 해달은 성게 수를 조절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들의 숫자가 줄면 해초 숲이 성게에 의해 초토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달의 식단 중 인간이 섭취하는 종도 있으므로 어부와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동해안에서 잡히는 해달의 털은 나라에 바치는 진상품이었다.
특히, 중국의 사신들은 해구신(海狗腎)과 해달피(海獺皮)를 특별히 좋아했다. 이런 이유로 당시 호조에서는 중국 사신이 올 때마다 이것을 구하기 위해 강원감사 등 지역 관리에게 해달 가죽 구하기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찌되었던 어민에게는 많은 수입을 보장하며 고기와 내장은 좋은 식재료가 되므로 해달 사냥을 많이 하였다. 특히, 1741년과 1911년 사이에 총을 이용한 사냥 때문에 개체 수가 급감하고 분포지역 또한 줄어들었다.

지금은 동해 바닷가에서 해달을 발견할 수가 없으나 1720년 당시에는 파도를 타며 놀고 있는 해달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역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해방 전후까지만 해도 간혹 바다에는 해달이 있었다고 한다.
한편, 대왕암에는 해달을 사냥하기 위하여 포수가 잠복하였던 바위가 있는데 지역에서는 이 바위를 `포수바위’라 부른다.

이처럼 멸종에 이르게 된 것은 가죽을 노린 인간들의 밀렵과 환경파괴로 인한 다양한 해초와 조개 및 성게 등 먹이 부족과 같은 문제도 있다. 그런데 해달이 인간에게 조개 선물을 준다는 소문이 웹상에 떠돌아다닌다. 해달은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열심히 뭍으로 나와 조개를 까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해달의 귀여운 외모로 공격성이 낮을 것이란 생각과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고자 하는 바램이 만들어 낸 소문이다.
어찌되었던 우리나라의 동해안은 해달이 파도를 타고 노니는 생태계가 살아있는 그런 바다로 다시 복원되었으면 좋겠다. 

*이 콘텐츠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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