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립미술관, 세계적인 미술관 되려면
차별성․지역 정체성을 동시에 부합시켜야
민중미술 전시공간으로 특화하면 어떨까

김연민
울산대 산업경영공학부 교수

미술관을 중심으로 문화도시가 된 예로 스페인의 빌바오를 들 수 있다. 빌바오는 네르비온 강가에 랜드마크적 미술관을 중심으로 교통인프라, 도시공간 재편성을 통해 문화도시 형성 및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결한 성공한 도시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은 세계 최고의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미술관으로, 파리의 루브르,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 이어 유럽에서 3번째로 연회원이 많은 미술관이다. 철강, 조선 등이 쇠퇴한 공업 도시 빌바오를 한 해 13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만들어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울산시립미술관 운영방안 연구’는 울산 시립미술관의 미션과 비전을 ‘현대예술과 문화로 소통․대화하며 첨단 예술 문화 현상을 공유하는 공공미술관’으로 잡았다. 미술관은 막대한 예산과 인력, 시간이 투여되기에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계획수립이 중요하며, 기존 미술관들과의 차별화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울산시립미술관이 세계적 수준의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차별성’과 ‘지역 정체성’을 동시에 부합시켜야 한다. 울산 시립미술관의 연간 운영비는 80억이며, 작품구매예산은 ‘18~20년 50억(100점), ‘21~25년 15억(20점), ‘26~이후 10억 내외(20점)로 계획하고 있다. 빌바오 미술관이 건설비로 1억5,000만 달러를 들인 데 반해 울산 시립미술관은 2021년 말 완공 예정으로 738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세계적인 미술 작품을 수집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세계 최고가로 경매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4,800억원에 낙찰돼 루브르 박물관의 첫 별관인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전시된다. 폴 세잔, 폴 고갱, 잭슨 폴록의 작품도 2,000억원을 훨씬 웃돈다. 한국에서 사들인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90억원 정도였다. 한국 작가로는 가장 고가로 경매된 박수근의 ‘시장의 여인들’은 25억원에 낙찰된 바 있다. 김환기, 이중섭의 작품도 10억원을 호가한다. 시립미술관의 작품 구입 예산으로는 세계적인 작품은 고사하고 한국 유명 작가의 작품도 수집하기가 쉽지 않다.

울산시립미술관을 첨단과학과 예술이 융합한 현대미술로 비전을 잡는 것은 울산이 가진 차별성과 지역 정체성을 살리기 쉽지 않다. 후발 미술관으로서 첨단기술로 장착된 미디어 등의 현대미술은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갖지만 기술발전의 속도를 감안 한다면 유지와 관리의 한계도 있다. 80년대의 백남준 비디오 아트는 오늘날에는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하며 부품 등의 기계적 관리에 어려움을 갖고 있다.

울산이 가진 차별성과 지역 정체성을 살리며 세계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하려면 울산시립미술관을 민중미술의 수집, 복구, 연구, 홍보, 전시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부터 생성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시대정신이 시각적으로 함축된 미술품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또한 한국 미술사에서 ‘진경산수화’와 함께 미술의 유파를 자생적으로 생성시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주목을 받는 미술사조이다. 국내에서는 보수적인 문화 정서에 의해 저평가되고 있었지만 1994년에 개최됐던 국립현대미술관의 ‘민중미술 15년 전’을 전후해 제도권 진입의 전· 후로 나누기도 하며, 생활문화까지 영향을 주는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사회적 변혁 운동의 일환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민중미술품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200점), 청관제 조재진(약 150여점 예상), 부산 민주화 기념재단(1,000여점)에서 수집되었으며, 민중미술가들을 오랫동안 전속작가로서 계약하고 있는 미술관인 가나아트와 학고재 갤러리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삼성의 리움 갤러리에서도 민중미술 작품이 수집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민중미술품을 특화해 적극적으로 작품을 수집하고 연구와 전시를 운영하는 국내의 국· 공립 미술관은 현재는 없다.

울산시립미술관을 세계적 인정을 받았음에도 국내의 보수적 문화 정서로 저평가되고 있는 민중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차별화하면 한국 민중운동의 현장인 울산의 지역 정체성을 살리며 세계 유일의 민중미술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며, 울산을 국내외의 미술 애호가가 찾는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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