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한 말바꾸기 강조하며 일본이 먼저 상호호혜 원칙 위반
18일 강제징용 3국 중재위 구성 日 답변시한
21일 참의원 선거 아베 압승시 추가 조치 불가피
23일~24일 WTO 일반이사회 한일 공방 명분쌓기 
"日 수출규제는 한국경제 핵심인 반도체 소재로 시작, 우리 경제 가로막은 것" 
WTO 앞두고 日 수출규제 성격 선명하게 부각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조치를 "현명하지 못한 처사",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을 경고" 등의 강도 높은 표현을 써가며 비판한 것은 향후 일본의 2차 보복 조치를 사전에 차단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원칙적 대응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수보회의에서 "일본은 당초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조치의 이유로 내세웠다가 개인과 기업 간의 민사판결을 통상 문제로 연계시키는 데 대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우리에게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 제재 이행 위반의 의혹이 있기 때문인 양 말을 바꿨다"며 일본의 행태를 꼬집었다. 

또 "이는 4대 국제수출 통제체제를 모범적으로 이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제재의 틀 안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우리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 더욱 강경해지는 문 대통령 어법…일본 기업 피해 경고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 강도는 지난 주보다 더욱 강경해졌다. 

문 대통령은 일주일 전 수보회의에서 "한국의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상황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틀 뒤 열린 국내 30대 기업 총수 초청 간담회에서는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하고, 아무런 근거 없이 대북 제재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양국의 우호와 안보협력 관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수출규제 조치가 정치적 목적에 기인하는 것은 물론 한일 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15일 수보회의에서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을 경고한다"며 한국 기업들의 일부 피해 발생에도 불구하고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대응은 당장 이번 주 한일 갈등의 중대 분수령이 될 일본 정부의 '제3국 중재위 구성 답변 시한'(18일)과 일본 참의원 선거(21일)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불편했던 과거사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분리 대응한다는 평소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일본의 추가 도발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다진 것으로도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정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제3국 중재위 회부' 답변 시한인 18일까지 우리 정부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을 경우, 한국 정부가 외교적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는 명분을 국제사회에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 협정 3조 분쟁해결 절차에 근거해 외교상 협의는 물론 중재위 구성까지 제안했지만 우리 정부가 응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참의원 선거 등 국내 정치에 적극 활용할 수도 있다. 

특히 한국 정부의 전략물자 대북 반출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제적 신의'를 언급한 아베 총리의 과거 발언을 감안하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아예 제외하는 것은 물론 수출 규제 품목에 다른 소재·부품 항목을 포함하는 등 2차 보복조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문 대통령이 "일본이 이번에 전례 없이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시킨 것은 양국 관계 발전의 역사에 역행하는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이 같은 일본 정부의 사후 시나리오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 스위스 제네바 WTO 정식 논의 '명분쌓기'

문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오는 23일~24일 이틀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일반이사회에서 자유무역주의에 반하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철저하게 따진다는 정부 기조와도 맥을 같이 한다. 

'말바꾸기', '일방적 조치' 등을 강조한 것도 일본 정부의 부당함을 WTO 일반이사회에 적극 알리기 위한 것으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164개국의 대사급 인사가 참석하는 일반이사회는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각료급 회의를 제외하면 WTO의 실질적 최고 기관이다. 

백지아 주 제네바대표부 대사가 연설자로 나서 국제사회에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 의미를 설명하고, 일본 측에는 규제 철회를 요청할 예정이다. 

특히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자국 내 수출 시스템 점검에 불과하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런 논리를 타개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한국 기업들은 물론 우리 경제 전반의 피해를 우려한 것도 눈에 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자국 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한 통상적 보호무역 조치와는 방법도, 목적도 다르다.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제한으로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는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목적의 경제 보복과 자유무역주의에 반하는 행위를 엄중하게 다루는 WTO 일반이사회를 앞두고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 성격을 명확히 한 셈이다. 

반세기 이상 소재·부품 산업과 조립·완제품 생산으로 국제 분업의 길을 걸어온 한일 관계가 일본의 일방적 수출 제한 조치로 파국을 맞을지라도, 이번 사태를 결연하게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점도 일본 정부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오히려 일본과의 제조업 분업 체계에 대한 신뢰를 깨뜨려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소재, 부품, 장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수입처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며 "이번 일을 우리 경제의 전화위복 기회로 삼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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