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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 보낸 2019년 ‘송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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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9.12.11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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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배호 화백




천 개의 손에 천 개의 눈이 달린 
천수관음보살의 천수천안(千手千眼) 
눈이 달린 손은 마음이 있는 손 

많은 것 잃고 많은 것 버린 한 해 
비움은 항상 새로운 것의 시작 
솎아내는 일 더 큰 것 키우기위한 손길 

김병길 주필




높이 나는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많은 것을 버린다. 심지어 뼈 속까지 비워야 한다. 무심히 하늘을 날고 있는 새 한 마리가 가르치고 있다. 
어느덧 세월의 뒷모습이 저만치 빠져 나간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2019년 끝자락에서 문득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묘비명에 남기고 싶은 말이 많았을 텐데 그는 덧없는 인간사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우물쭈물하면서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묘비명이다. 
사람은 삶의 준말이다. ‘사람’의 분자와 분모를 약분하면 ‘삶’이 된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아픈 상처도 사람이 남기고 가며, 가장 큰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온다. 
인도에서 불교와 거의 같은 시기에 생긴 자이나교는 도덕적인 고행(苦行) 생활을 강조한다. 그들에게는 1년에 한번 용서의 날이 있다. 그날 자이나교도는 지난해를 돌아보고 땀과 공기, 물과 불, 동물과 사람 모든 존재에 해를 끼친 행동을 낱낱이 기억해 내면서 하루 동안 단식을 한다. 

지신이 해를 끼쳤거나 생각과 말과 행위에 맞섰던 사람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 똑 같은 영혼을 지닌 당신도 나를 용사하기를 부탁한다. 멀리 떨어져 찾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편지를 쓴다. 그런 다음에야 단식을 중단한다. 
한 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을 바라보면서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본다. 내게서 또 한 해가 빠져 나간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잘 산 한 해였는지 못 산 한 해였는지 헤아린다. 내가 누구에게 상처를 입혔거나 서운하게 했다면 용서를 구하고 싶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 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자 어느 생각하는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 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 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붓글씨를 쓸 때 한 획의 실수는 그 다음 획으로 감싸고, 한 자(字)의 실수는 그 다음자 또는 다음 다음 자로 보완한다. 마찬가지로 한 행(行)의 결함은 다음 행의 배려로 고친다. 
이렇게 얻은 한 폭의 서예 작품은 실수와 보상과 결함과 사과로 점철되어 있다. 그 속에는 서로 의지하고 양보하며 실수와 결함을 감싸주는 따사로운 인정이 무르녹아 있다. 
천수 관음보살의 손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게 된다. 천개의 손 마다 눈이 달려 있었다 . 천수천안(千手千眼), 천개의 손에 천개의 눈이 달려 있었다. 눈이 달린 손은 마음이 있는 손이다. 수많은 손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은 마음이 있는 손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언덕에 올라 멀리 돌팔매를 하면 돌멩이는 둥글게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진다. 공중에서 둥근 포물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돌멩이를 보면서 그것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매우 쉬웠기 때문이다.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달리면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풍차처럼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도 그것이 공기의 무게 때문이라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 한다는 사실이다. 
어제가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오늘도 불행하고, 오늘이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내일도 불행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어제와 오늘 사이에는 ‘밤’이 있다. 이 밤의 역사는 불행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새벽을 위하여 꼿꼿이 서서 밤을 이겨야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시(詩)는 “세상의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그 조종(弔鐘) 소리는 단지 죽은 사람을 위한 종소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종소리임을 감동적인 시어로 깨우쳐 주고 있다.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희망의 언어다’ 무성한 잎사귀를 죄다 떨군 앙상한 나목은 비극의 표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지 끝에서 빛나는 빨간 감 하나는 ‘희망’이다. 그 속의 씨가 이듬해 봄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나무의 나이테가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더 단단하다는 사실이다. 
섬 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며, 산골 사람에게서 해는 산봉우리에서 떠서 산봉우리로 지는 것이다. 이것은 섬 사람과 산골 사람이 서로를 설득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 된다. 
지구의 자전을 아는 사람은 이를 어리석다고 하지만 바다와 산에서 뜨지 않는 해는 없다. 있다면 그것은 머릿속일 뿐이다. 바다와 산이라는 현장은 존중되어야 한다. 현장에 튼튼히 발 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이 곧 저마다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비움은 항상 새로운 것의 시작이었다. 지난한해 동안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버리지 않았나 싶다. 잃거나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은 서운한 일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을 솎아 내는 일, 더 큰 것을 키우기 위한 손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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